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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ucous님의 서재
  • 백년의 고독 1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9,900원 (10%550)
  • 1999-10-04
  • : 15,769
남미를 대표하는 문학 '백년의 고독', 먼저 작가 마르케스의 한 인터뷰 내용을 일부 공유합니다.

...가장 좋은 인터뷰 방법은 저널리스트가 아무 것도 받아 적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대화를 회상하며서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 적는 것이지요. 대화에서 사용된 단어를 사용할 필요 없이 말이에요... 녹음기는 사람들 스스로 바보 멍청이가 될 때조차 기록하지요. 그것이 없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말하게 되지요...

마르케스는 인터뷰이의 녹음 그대로를 받아적는 무책임한 인용 대신, 기자들 그리고 작가들에게 대화를 회상하며 자신의 지성으로 편집하라고 경고합니다. 사실을 주관적으로 편집하거나 조금이라도 개인 의견을 가미하면 날선 잣대를 들이대는 현대의 비판에 대항하는 신선한 시각입니다.

서구 사회에 소설의 부활을 알린 '백년의 고독'에 담긴 이러한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게 합니다. 마술은 신화, 즉 서구화 이전의 라틴 문명에서 큰 흐름을 담당해온 구전의 역사를 상징하며, 리얼리즘은 서구 문명의 기록의 역사입니다. 또한 리얼리즘은 기록을 기반으로 한 권력의 주류에 대한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 중심의 이러한 지나친 사실주의는 비주류의 진실을 오히려 은폐하는 역할을 합니다. 작품에서 콜롬비아 정부와 유착 관계로 마을 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던 바나나 회사가 초등학교 교과서와 언론에서 모두 사라지고, 회사와 노무자들간의 충돌에 정부 군대에 의해 사살된 노무자 3000여명의 죽음 또한 어느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희생자들을 목격하고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환상으로 치부됩니다.

비록 왜곡되어도 주관적인 기억이 리얼이며, 그 이상의 중요함은 역사 뿐 아니라 개개인의 일생에서도 나타납니다.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오랫동안 노력하였지만 실패한 한 개인에게 그 꿈을 제외하고 그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의 꿈과 사실을 재조립한 삶이 바로 그 사람의 진실인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은 현실에서 부재하거나 죽었으나 계속 나타나며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한 공간에 나타나 대화하고, 물려준 이름으로 형상화되어 대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가족들의 기억과 꿈으로 죽은 이들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자손에게 물려주는 조상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서사와 마을의 존재는 기억하는 일원이 존재하는 한 계속됩니다.

그리고 기억이 소멸하는 순간, 부엔디아 가문과 그들 주변에서 계속 영향을 주고 받던 세계인 마을마저 기억과 함께 소멸합니다.

"...거울의 도시(또는 신기루들)는 바람에 의해 부서질 것이고,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져버릴 것이고, 또 백년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가문은 이 지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양피지들에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반복되지 않는다..."

고독을 풀어내는 방식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근친으로 시작하는 가문은 원죄이며 근친으로 멸망한다는 운명을 예견합니다. 근친은 나 자신의 대한 사랑 즉, 나르시시즘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후손에게 이어지는 동일한 이름과 한 핏줄(또는 고독한 라틴 민족)로 표현되는 가문은 뿌리부터 썩은 그들의 시작과 고독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소멸을 예언하게 합니다. 썩은 고구마 뿌리에서 뻗어나가는 줄기처럼 어떻게 해도 고독과 소멸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멜키아데스가 예언한 것 처럼요.

이러한 고독한 부엔디아 가문의 일원들은 고독을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사랑과 증오로 서로에 대해 그리고 체제에 대한 투쟁을 지속합니다. 투쟁 대상이 없으면 소멸하는 운명을 예견한 듯 합니다. 아마란따와 레베카, 페르난다와 뻬뜨라 꼬데스, 우르슬라와 가족들,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혁명 모두 투쟁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대상이 없는 이들, 대령과 어린 나이에 결혼한 레메디오스는 일찍 사망하고 미녀 레메디오스는 심지어 승천합니다. 그리고 궁극적 사랑의 결합으로 완성된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고독의 정점 아우렐리아노는 태어나자마자 개미밥이 되어 죽는 비극으로 마무리합니다.

환상과 리얼리즘 사이를 오가며 고독과 소멸, 그리고 진실과 왜곡을 절묘하게 그리고 대단히 흥미있게 풀어낸 마르케스. 그리고 당대 소설가들의 '소설의 죽음'이라는 주장을 무색하게 할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로 소설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백년의 고독'. 서재에 오래도록 남을 역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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