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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큐레이션 리커버)
  • 박경리
  • 19,800원 (10%1,100)
  • 2026-05-19
  • : 2,89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김약국의 딸들』을 다시 읽었다. 거의 20여년 만인데 책을 읽는 동안 줄거리가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잊고 있던 이름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김약국의 딸들』은 박경리 작가가 1962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경남 통영을 배경으로 김약국 집안의 몰락과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원경에서부터 근경으로 다가간다. 마치 드론 카메라가 촬영하듯 구한말 통영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대대로 약국을 운영한 봉제, 봉룡 형제의 이야기와 비상을 먹고 자결한 봉룡의 처 숙정의 슬픈 사연이 소개된다.


‘김약국’이라 불린 성수는 봉룡의 하나뿐인 아들로 일찌감치 부모를 잃고 큰집에서 자라났다. 아들이 없던 봉제는 몸이 약한 딸 연순을 시집보내고 조카에게 집안 살림과 약국을 맡긴다. 김약국은 한실댁과 결혼해 첫 아들을 낳지만 아이가 죽고 내리 딸 다섯을 얻는다. 큰딸 용숙은 남편이 죽고 혼자 아들을 키운다. 둘째 용빈은 서울에서 공부하는 똑똑한 신여성, 셋째 용란은 용모가 뛰어나고, 넷째 용옥은 인물이 없는 대신 차분하고 야무지다. 막내 용혜는 아직 어리다. 다섯 딸들의 개성이 하나같이 다 다르다.


이 소설은 격변의 시대와 사회 구조 속에 한 집안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 잘 보여준다. 김약국은 부모의 흉사를 딛고 약국과 가문을 지켜온 인물이다. 땅에서 소작을 얻고 큰 어장도 가지고 있는데다 배를 구입해 새로운 사업도 확장한다. 매사 점잖고 경우 바르지만 시대 변화와 가족 내부의 갈등 앞에서는 우유부단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갈등이 생기면 입을 꾹 닫고 그 상황을 외면해 버리는 회피형 인물이다. 그 결과 집안에 드리운 불행을 끝끝내 막지 못한다. 몰락해 가는 전통적 가장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제목이 『김약국의 딸들』인 만큼 다섯 딸들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났는데 캐릭터가 다 다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자유연애나 사랑, 사회 활동을 꿈꾸기에 현실적 제약이 많았던 여성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이가 차면 적당한 혼처를 찾아 결혼해야 하고 유교적 관습에 따라 시가와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이 당연하다. 다섯 딸들 중 욕망에 충실하며 자유를 추구하는 용란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용숙, 용란에게 혀를 차다가도 장녀로서 책임감이 있는 용숙, 시대의 희생양인 용란의 이면을 보면 마냥 미워할 수 없다. 딸들 중에서 넷째 용옥이 가장 안타까웠다. 용란을 마음에 두었던 남편 기두에게 내내 사랑받지 못했고 남편이 비을 비운 때 시아버지 서영감에게 욕을 당한다. 우키시마호에 탔다가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막내 용혜는 상대적으로 언니들에 비해 서사가 많지 않지만 언니들과 다른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이 암시된다. 새로운 세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해야 할까.


박경리 작가가 보여주는 서사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쭉쭉 읽힌다. 생동하는 문장에서 인물들이 저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의 말맛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오래 전 가본 통영의 바닷바람과 소금기 어린 공기가 생각나면서 그러고 보니 박경리 문학관에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언젠가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 된 ‘하동집’에도 한번 들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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