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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이커
- 이희영
- 13,500원 (10%↓
750) - 2024-05-08
: 7,796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만약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와 다른 선택으로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희영 작가의 신간 『셰이커』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숱하게 맞닥뜨리는 선택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평범한 직장인인 서른두 살 ‘나우’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한민’과 ‘성진’을 만난다. 한민은 고등학교 때 죽은 ‘이내’를 언급하며 ‘하제’와 연인이 된 나우를 비난한다. 이내와 하제는 5년 넘게 사귄 첫사랑이자 연인이었고 나우는 오랫동안 하제를 좋아하면서도 마음을 숨겨왔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걷던 나우는 파란 눈을 가진 검은 고양이를 따라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이름조차 없는 붉은 색 네온 간판의 칵테일 바에 들어간다. 칵테일 바의 기묘한 분위기가 긴장감을 일으키며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흥미진진하게 한다. 특히 칵테일 바에 먼저 와 있던 다른 손님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지나가는 인물처럼 가볍게 언급된 이 손님에 대한 떡밥이 결말에서 밝혀진다. 바텐더가 건네는 칵테일 ‘블루아이즈’를 마신 나우는 놀랍게도 열아홉 살의 과거로 회귀한다.
바텐더는 혼란스러워하는 나우에게 과거가 아닌 ‘그분의 세계’에 온 것이며 칵테일을 마시면 나우가 원하는 순간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내가 죽기 5일 전으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나우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고민한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 하제에게 청혼할 것인지, 이내를 살릴 것인지. 열아홉 살의 나우가 ‘그린데이’를 마시고 회귀한 곳은 열다섯 살의 과거다. 게임을 하느라 자기 대신 심부름을 보냈던 이내가 하제와 운명적인 첫 만남을 하기 전의 바로 그때였다.
자신이 먼저 하제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약속 장소에 나간 나우는 인연이 될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제는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던 나우보다 뒤늦게 알게 된 이내와 훨씬 더 잘 통했던 것. ‘옐로 튤립’을 마신 뒤 가게 된 스무 살은 이내의 부재로 방황하던 하제와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가까워진 시점이다. 나우는 하제가 자신을 보면서 평생 이내를 떠올리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한편 이내의 여자친구를 좋아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피치블랙’을 마신 나우가 다시 열아홉 살로 돌아가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고3 때 이내는 반려동물 페어에 가려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내의 죽음을 막기 위한 나우의 노력은 과연 성공할까? 이내를 살리면 하제와 결혼할 수 없는데? 이내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나우에게 잊지 못할 말을 남긴다. 다섯 번의 시간 여행은 나우의 무의식이 불러낸 환상일지 모른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로 현재를 무의미하게 보내기보다 1분 1초가 모두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겠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년에 나온 이희영 작가의 전작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가 떠올랐다. 흔히 인기 웹소설에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주인공은 과거를 바로잡고 행복을 찾기 위해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을 한다. 하지만 『셰이커』는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라고 말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이내가 부르던 나우의 별명은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묵직한 주문이다. ‘롸잇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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