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지만 내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비용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삶은 얼마나 지구에 빚을 지고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어제 저녁으로 시켜 먹은 배달 음식만 해도 플라스틱 용기가 가득하다. 음식은 어떨까. 고기를 정말 좋아하지만 축산업의 과정과 규모를 떠올리면 머리가 아프다. 매일 몸을 싣는 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버스 안에서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를 바라볼 때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노력으로 대기오염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대중교통 수단도 매연을 뿜지 않나? 여기까지 생각하게 되면 역시 인간이 사라지는 게 친환경인가 싶다. 사람이 모두 사라진다면 빙하를 녹이는 오염도, 머리 아픈 고민도 끝이 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지구 위에서 갚을 수 없는 빚을 늘리며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 그 빚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지만 우리만 갚지 않는다. 곁에서 살아 숨 쉬는 동물과 식물을 비롯한 무수한 생명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가 함께 갚는다. 이것은 마음을 아주 무겁게 만드는 일이다. 살아가는 매순간이 이러한 떠넘기기임을 느낄 때면 정말 사라질 수는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일이 꼬인 것이 우리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사라짐을 택하기 전에 먼저 세상을 바꿔 볼 수는 없을까. 세상을 바꾸고 바꾸다 안 되면 그때 사라져도 좋지 않을까. 이 안에서 그럼에도 살아가고자 한다면 방법은 그뿐이다.
책은 아홉 가지 주제로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야기한다. 핵심은 ‘한계’를 아는 것에 있다.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하지 않기, 성장하기보다는 크지 않기, 멀리 가기보다는 주변을 둘러보기에 집중한다. 끝을 알고 거기에 닿기 전에 멈추는 일은 셀 수 없이 불어나는 마음의 빚, 사라져야 할 이유를 덜어내는 일이다. 그게 위안을 준다.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다른 삶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환경과 동물, 식물, 지구를 비롯한 복잡한 고민이 한결 단순해진다. 우리의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성장주의, 과학만능주의 등 우리보다 먼저 뿌리내린 구조의 힘이 막강하기에 이것을 바꾸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이렇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함께인 편이 좋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라본다. 그런 세상은 그럼에도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