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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噺各哂(옥신각신)
  • 늙어감에 대하여
  • 장 아메리
  • 10,800원 (10%600)
  • 2014-11-10
  • : 3,018

 늙음이 공포로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연고를 바르기 전에 연고에 적힌 깨알보다 작은 '주의사항'을 읽어보려는데,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악몽을 꿀 때, 아무리 발버둥치고 소리를 질러도 꼼짝 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순간이었다. 다초점 안경을 쓰고도 선명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특히 시력이 좋았던 나로서는 불가해한 일이었다.

 이 책의 저자 장 아메리는 그 '늙어감'에 대해 아주 냉정하게 쓰고 있다. '4판 서문'에는 앞서 책을 출간했을 때, "고작 쉰다섯 살의 이 '젊은 인간 J.A.가 늙어감이, 나이를 먹는다는 일이 뭔지 대체 알기는 하겠어? 그런데도 무슨 이야기를 늘어놓겠다는 거야?"하고 '정말 고령의 신사'가 엄혹하게 비판했던 일을 두고 말한다.

 

 "나는 텍스트를 다시 읽으면서 유쾌한 노인의 이 말이 심히 유감스럽지만 틀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내가 옳았다. 아, 이런!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말했던 것을 강조했으면 강조했지 축소하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다. 모든 게 내가 예견했던 것보다 더욱 나빠졌을 따름이다. 몸의 늙어감, 문화적 늙어감, 음울한 표정의 사내가 다가오는 게 매일 더욱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일 등등. 그 음울한 사내는 내 곁을 스쳐지나가며 마치 저 라이문트 발렌틴처럼 기괴할 정도로 음산하게 나를 부르곤 했다. "친구, 어서 오게...""

 

 그러니까 저자는 이 책을 1968년에 출판하고, 그 후 10년이 지난 1977년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다음 해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처음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살아있음과 덧음이 흐르는 시간...일단 반항을 시작한 사람은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없다."(P.51)

 

 "이로써 생각함이라는 위험지대를 벗어나 습관이라는 편안함으로 후퇴하는 것일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치 시간을 잘 아는 양 행동하는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하리라."(P.52)

 

 "몸은 가지지 않아야 완전히 소유한다. 다시 말해서 느껴지지 않는 몸이 건강하다."(P53)

 

 "곧 내가 '나 아닌 나'가 되는 깊은 충격이 노화의 진실이 아닐까. 젊은 시절에는 당연하다고만 여겼던 게 돌연 낯설기만 한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소름끼침은, 우리 인간의 근본 정서 가운데 일부인 소름끼침은 거울 앞에서 물러나 평소 일상에 뒤덮여 하루 일과를 감당하느라 잊힐 따름이다...그럼 돌연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라는 것, 곧 '나 아닌 나'가 평소 익숙한 나를 문제 삼으면서 충격과 경악이 고개를 든다."(P. 61)

 

 "늙어감의 기본 상태라는 게 있다면 이 상태는 비참함과 불행함이라는 단어로 어느 정도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으리라. 비참하다는 말은 어떤 고통이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는 어렴풋함 의식이 가져다 주는 답답함이다. 그리고 불행함이란, 그것을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실존의 공간을 채우는 어떤 '확신'이다.

 

 2년 전, 이 책을 읽고 수첩에 옮겨 둔 글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이 아닌가.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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