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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噺各哂(옥신각신)
  • 연인
  • 마르그리트 뒤라스
  • 8,100원 (10%450)
  • 2007-04-30
  • : 7,863

  <연인>을 처음 만난 건 영화였다.

 토니륭과 제인 마치가 주연했던. 당시 19세의 제인 마치는 소설 속 '소녀'에 딱 어울리는 그런 소녀였다. 토니륭 또한 부유한 중국 남자이면서 너무나 여린 속을 지닌  '그'는 걸맞게 퇴폐적이어서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를 본 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이 밀애를 나눴던 그 공간은 눈에 선하다. 소설에서 그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시의 소음이 매우 시끄러웠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그 소리는, 너무 크게 들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영화 소리 같다.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방은 어두웠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 속에 둘러싸여 있었고, 도시 안에 파묻혀 있었고, 도시라는 기차 안에 실려 있었다. 창문에는 유리창이 없었고, 발과 블라인드만이 내려뜨려져 있었다. 햇빛은 받아 보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발 위에 어른거렸다. 늘 엄청난 사람들의 무리였다. 블라인드 때문에 그 그림자들에는 줄무늬가 나 있었다. 나막신들의 딸그락거리는 소리들이 머릿속을 때리듯 울렸고, 목소리들은 날카로웠다. 중국어는 소리를 지르며 말하는 언어여서 나는 마치 사막의 언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야릇한 언어였다."

 

 그렇게 소녀는 열다섯 살 반이었을 때, 메콩 강을 건너는 나룻배에서 그를 만나 그 곳으로 갔다. 일 년 반이 지나고 난 뒤의 소녀를 두고 작가는 말한다.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과 스물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고, 결코 물어본 적도 없다. 다만 가장 싱그러운 젊은 날을, 생애에서 가장 축복 받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이따금 충격적인 시간들이 후려치곤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해 주었던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소녀는 남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여자들을 두고 말한다.
 "욕망을 외부에서 끌어 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욕망은 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첫눈에 벌써 욕망이 솟아나든지 아니면 결코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성욕과 직결된 즉각적인 지성이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는 '경험'하기 이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알고 있다. 결코 그와 결혼을 한다거나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식당에 앉아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깨달음을 다시 느낀다.
 "갑자기 고통이 느껴진다. 아주 경미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입힌 생생하고 신선한 상처에서 느껴지는, 빗나간 심장의 고동이다. 지금 나에게 말하고 있는 이 사람, 오늘 오후 내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던 이 사람이 나에게 입힌 상처."  마르그리트 뒤라스, 본명 마르그맅리트 도나디외는 70세에 이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 뿐만 아니라 희곡, 시나리오 등을 썼고,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연인>을 두고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겨 있어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비평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자전적인 것을 쓴 적은 없지만, 내 작품은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한 것들입니다." 고 레이먼드 카버가 말한 것처럼 모든 창작물은 결국 창작자의 삶의 결과물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예전에 샀던 책을 못찾아 2011년에 다시 사두고 끝까지 읽지 못했다. 책의 마지막 뒷표지를 덮고 내다본 창밖 5월의 연초록이 내 몸속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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