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여자의 로망을 채우는 남자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주인공이 마음을 둔 남자는 깔끔쟁이에 고지식한 채식주의자고,주인공과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남자는 순애보지만 스펙과 외모가 딸린다.주인공의 첫사랑은 음식물쓰레기를 나르는 품절남이 되었으며,주인공의 형부는 공무원 시험 본답시고 집에서 뒹구는 민폐남이다.
그러나 이 모든 찌질한 남자들 모두 함께 살아갈 여자가 있다는 것,우리가 부대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 이런 조금씩은 찌질한 사람들이라는 것.
"나는 화가 치밀었다.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말하는 민선의 경솔함에, 은근히 인화 언니를 좋게 생각하는 흐물의 속물스러움에,흐물 같은 남자에게 관심을 표함으로써 스스로 품격을 낮춰버리는 인화 언니의 바보 같음에."
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찌질한 연애의 정석을 보여준 <연애의 온도>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알 것 다 알고, 할 말 못 할 말 다 해본 언니에게서,안주 몇 개와 캔 맥주를 잔뜩 쌓아놓고,"야! 마셔! 인생 별 거냐? 내가 전에 만난 그 놈들 얘기 들으면 너도 뒤로 넘어갈걸?"로 시작하는 이야기 한 편 들은 것 같다.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도 "미쳤어~!" "왜 그랬어~!" "잘했다~!" 이런 추임새를 넣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 언니가 좀 더 '쿨'하지 못함에 답답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일상의 언어들만으로도 흡입력 있는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다.무엇보다 한 일간지에서 밝힌 저자의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감을 읽고, 다음 작품이 기대되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소설에 자기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잖아요. 거기서 더 확장하지 못하는 작가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저 자신을 더욱 확장해 사회 문제도 소설로 다루고 싶어요.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그런 소설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 역사, 그중에서도 모든 인간사를 집약한 축소판이라고 할 전쟁에 특히 관심이 많아요. 앞으로 전쟁을 비롯한 역사 문제를 소설로 쓸 생각입니다.”
일상의 이야기를 넘어 소재의 스펙트럼을 넓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