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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 스콧 라이트
  • 13,500원 (10%750)
  • 2015-12-21
  • : 177

[서평] 오스카 로메로_스캇라이트저 김근수역


2013년 봄 엘살바도르에 열흘간 방문했었다. 다니던 대학원에서 가톨릭 사회교리와 중미의 맥락에서 교회의 사회참여등에 관해서 현장학습으로 다녀왔던 것이다. 주로 방문했던 곳들이, 1989년 중앙아메리카대학에서 군부에 의해서 6명의 예수회 신부들이 살해당한 현장, 농민들이 학살당했던 지역, 그리고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사역했고, 1980년 살해당한 성당등이었다. 


중미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의 현대사는 많은 부분 남한과 유사한 점들이 있다. 식민지시절과 군부독재를 경험한 어느 나라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정치적 억압들. 그렇게 어렵게 획득한 민주화이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구습과 해결되지 않은 계층들간의 갈등. 기독교사회윤리를 공부하는 내게 가장 관심있게 다가왔던 것은 이런 복잡하고 격변하는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교회의 위치였다. 국민의 대다수가 가톨릭신앙을 고백하는 엘살바도르에서 교회는 군부에 대해서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오스카 로메로와 순교한 여러 사제들처럼 정의의 편에서 목소리 없는 이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어준 경우도 있겠으나, 교회의 전반적인 묵인과 동조없이 군부는 그렇게 오래 또 광범위하게 힘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 <<오스카 로메로>>는 한국기독교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인생과 그의 회개과정을 소개한 전기이다. 역자는 엘살바도르에서 해방신학의 대가이자 6인의 예수회 사제 살해사건의 생존자 혼 소브리노에게서 배운 김근수 교수다. ‘가톨릭 프레스’의 편집인이기도 한 그는 최근 여러 책들, 기사, 인터뷰등으로 해방신학, 혼 소브리노, 그리고 오스카 로메로를 한국에 활발히 소개하고 있다. 해당 내용에 정통한지라 전문적인 내용 전달에 충실한 것은 당연하고 문체도 매끄러워 가독성이 높다. 첨언하자면, 원서의 제목은 "Oscar Romero and the Communion of the Saints" 우리 말로 옮기면 "오스카 로메로와 성인의 통공." 개신교적으로 바꾸자면, "오스카 로메로와 성도의 교통" 정도가 될 것이다. 성인의 통공 혹은 성도의 교통이라는 신학적 주제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가톨릭신학자인 엘리자베스 존슨의 설명을 참고해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43개 정도의 짤막짤막한 (e-book으로 읽은 것이라 지면으로 몇 페이지씩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장들로 이뤄졌다. 각 장들도 그렇고 개별 문장들도 짧은 호흡의 글이라 다른 일들을 하는 중간중간에 편히 읽을 수 있었다. 각 장의 제목들은 다 읽고 나면 아주 선명하고 간략하게 각 장의 내용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로 잘 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용을 읽기 전에 목차만으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 따라 그의 삶을 크게 구분해 보자면 1) 가난했던 어린시절, 2) 모국과 로마에서의 신학 공부, 3) 해방신학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초기 사역, 4) 산살바도르 대주교가 된 직후 한 친구의 죽음을 통한 그의 회개, 5) 회개후 그의 사역, 6) 1980년 순교로 구분될 수 있겠다.


이 책이 강조하고 있으며, 또 내가 잘 몰랐던 부분은 바로 오스카 로메로의 "회개"라는 부분이다. 군부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과 또 죽기직전 3년간 정부에 강력하게 비판적이었던 그의 메시지를 고려해 볼 때 그의 평생의 삶 역시 가난한자들에 대한 정의와 평등을 위한 투쟁에 바쳐졌다고 쉽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제로서의 그의 삶의 대부분은 해방신학에 비판적이었으며,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유보적이었다. 그와 마주쳤던, 또 싸웠던, 여러 사제들은 그가 주교 시절에 보였던 보수적인 입장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로메로는 군부에 무비판적이었으며, 해방신학자들의 마그나카르타와 같은 메데인 문헌을 인용하기를 꺼렸었다. 또 제 2차 바티칸의 개혁적인 의미란 사목적인 부분에 국한되었다고 보았다. 사실 그가 산살바도르 (엘살바도르의 수도)의 대주교가 된 것도 농민들이나 가난한자들의 지지 때문이 아니라 그의 보수적 성향이 부자들과 군부의 입맛에 맞아서였다. 물론, 그가 자란 가정과 마을은 아주 가난한, 전형적인 엘살바도르인들과 같았다. 하지만 그의 신학교육과, 로마에서의 성공적인 유학, 귀국 후에도 이어진 교회내에서의 상승가도가 그로 하여금 나머지 엘살바도르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멀어지게 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의 삶의 궤적이 이대로만 이어졌다면 로메로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이유가 없다. 성공적이고, 보수적이고, 엘리트적인 그의 삶에서 무언가 큰 격변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이 전기는 로메로가 산티아고 데 마리아 교구 주교로 일할 때가 계기였다고 본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 그에게 회개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이다. "회개의 씨앗"이라는 장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국가 방위대에 의해서 살해당한 자기 교구의 농민들, 노동자들의 죽음을 마주하며 서서히 삶의 방향전환을 시작 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이 얼마나 깊었던지간에 이때까지 로메로는 여전히 표면적으로는 교회가 정치적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으며, 부자나 권력가들의 마음에 호소함으로서 문제를 조용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어쨋든, 이때 시작된 회개의 씨앗은 2년뒤 자신의 친구이자 농민들의 해방투쟁에 깊이 관여했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 (그의 사역에 대해서는 "사목실험"장에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의 죽음을 통해서 꽃을 피우게 된다. "회개의 씨앗," "사목실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의 순교," "문턱을 넘어," "집으로 가는 길" 등에서 이 과정을 소개한다.


로메로 자신은 회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저는 변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가 이 사건을 어떻게 묘사하던지 간에, 이 사건 이후의 로메로의 메시지나 정부에 대한 입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자신이 한때 의심을 품고 바라보던 메데인 문헌을 적극적으로 대주교로서 자신의 교서와 매주 행해지던 강론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강론을 통해 가난한 자들의 투쟁에 대한 정부의 폭압적인 조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그의 회개는 구체적인 헌신이 있었으며, 그 헌신의 급진성과 강력함 때문에 그는 대주교가 된지 3년만에 자신이 미사를 집전하던 성당에서 군부가 보낸 암살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된다. 


로메로의 삶을 차근차근 소개한 것에 더해 이 책의 또 한가지 장점은 후반부에서 로메로의 교서들과 강론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 신자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요 신학자로서 세상 정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고민한 부분이 소개된다.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대주교로서 발행한 그의 두번째 교서를 (그는 총 4편의 교서를 발행했다) 소개 했으며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와 "새로운 구원의 빛"은 그의 강론 내용을 옮겨놓았다.


이 책이 던지고 또 답하고자 하는 질문들은 크게 두 가지이다 (실천적, 이론적). 먼저는 그의 회개와 관련된 것이다. 무엇이 부자들과 군부의 입맛에 맞던 대주교를 그들의 손에 죽게 만들었는가? 다시 말해,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가? 정답은 선명하다. 가난한 자들과의 직접적인 만남, 그리고 친구의 죽음과의 직면이다. 정답은 간단할 수 있지만, 그 적용은 쉽지도 가볍지도 않다. 현장과는 동떨어져 말로만 교회의 중립이니 양극단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이니 하는 소리만 하는, 그리고는 자신의 삶은 던지지 않는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의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다. 가난한자들과의 만남은,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두번째는 이론적인 것인데, 이 책의 중반부와 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그리고 그의 마지막 교서의 제목이기도한) "국가 위기에서 교회의 역할"이었다. 그를 단순히 순교자로,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한 개인으로서만 묘사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오스카 로메로의 회개는 단지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국가의 교회를 이끄는 대표로서였다. 그의 고민은 언제나 교회론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에 대한 신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독자로서일뿐 아니라 한 집단의 대표로서 고민했기에 사회에서 교회의 위치에 대한 그의 고민은 보다 더 깊고 무거운, 따라서 신중한 것이었을테다 (이게 그의 초기 보수적인 입장에 대한 변명이 된다면). 그는 경험을 통해서 배운 통찰을 자신의 신학적,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가톨릭 사회 교리의 프레임 안에서,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그 깊은 고민에 대한 단초들이 그의 교서 내용에 자주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상당히 큰 인상을 받았던, 그러나 잘 알지 못했던 한 인물에 대한 아주 좋은 소개였다. 그리고 단순한 연대기적 기술이 아니라, 선명한 두가지 촛점 (가난한 자들과의 만남을 통한 그의 회개, 그리고 교회를 두고 했던 그의 신학적 사목적 고민)으로 잘 정돈된 기술이라 더 의미가 깊다. 저자 스콧라이트는 미국인이다. 마지막 장 “살아있는 말씀”에서 엘살바도르인 순교자 오스카 로메로가 중미를 넘어 미국 사회에 주는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러나 근대사에서 비슷한 역사를 경험한 한국 사회에 오스카 로메로의 삶이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보며 읽으면 좋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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