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율리汩利책방
  •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2
  • 박승찬
  • 15,300원 (10%850)
  • 2016-06-30
  • : 567

이 책의 서문을 보니 가톨릭 대학교에서 중세철학을 가르치는 박승찬 교수의 평화방송 강연 “그리스도교, 서양 문화의 어머니”를 2권의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중 2권이다. 저자가 사랑한다고 밝히는 신앙의 두 거인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라고 하는데, 2권에서는 아퀴나스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이다. 총 13개의 강좌 중에서 5개의 강좌가 아퀴나스의 신학과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중세철학사 강의가 SBS와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선정한 “대학 100대 명강의”로 선정되었다던데, 그의 다른 강연을 정리한 이 책도 역시 아주 훌륭한 대중서라고 평할 수 있겠다. 난해한 철학, 신학적 내용 정리도 간결하고, 설명을 위한 예시들도 적절해서 어렵고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 중세의 이야기들이 쉽게 읽힌다. 천년도 더 된 중세의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마치 건너건너 아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듯 독자들을 몰입하게 한다. 나는 그의 강연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만 읽어도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책으로 꼼꼼하게 편집해낸 편집부의 노력도 느껴진다. 얇지 않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이틀간 정신없이 몰두해서 읽어 내려갔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 책은 13개의 강좌로 구성된다. 아마도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기술했을 1권에 이어서 이 책에서는 8세기 카를 대제 (혹은 샤를마뉴)로부터 15세기 중세말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14강부터 16강까지는, 카를 대제로부터 시작되는 문예부흥, 수도원의 발흥이 어떻게 중세 스콜라주의의 배경이 되는지, 그리고 스콜라철학에서 신학과 철학의 만남이, 혹은 신앙과 이성의 만남이 안셀름과 아벨라르두스라는 대표적인 인물들에 의해서 펼쳐지는지를 먼저 개괄한다. 나로서는 속죄론이라는 신학의 전문분야에서 이론적으로만 딱딱하게 접했던 두 인물을, 그들의 전체 신학적 영향을 꽤 친근하게 소개 받은 느낌이었다.


17강에서는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전히 어느정도는 그리스도교중심적으로 읽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자기비판적으로 이슬람문화권과 서구유럽그리스도교문화권의 “조우”를 개괄한다. 이 장은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이 어떻게 서구로 유입되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중세초기부터 중기까지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적으로 수용한 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던 반면, 13세기 아퀴나스시대 직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서구로 소개되고 유입되는데 그 통로가 바로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구는 헬라철학의 두 기둥 중 하나였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슬람문화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개받았던 것이다.


18강부터 20강에서는 이 만남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어떻게 이 “새로운” 철학이 중세 기독교문화권에서, 구체적으로는 중세 대학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었고, 또 비판적으로 결국에는 수용되게 되었는지 설명해준다. 21강과 22강은 아퀴나스의 성장과 교육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며 그의 대표작 <<신학대전>>을 3권을 중심으로 설명해준다. 이 장들에서는 아퀴나스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애정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아퀴나스의 <<신학 요강>>과 <<대이교도 대전>>을 라틴어에서 한글로 번역한 아퀴나스 전문가이다. 내용은 간결하고 쉽게 풀어 썼지만, 깊이가 덜 한 것은 아니다.


23강에서는 바실리카-로마네스크-고딕으로 이어지는 중세의 건축양식사를 통해서 어떻게 중세인들이 신에 대한 신앙을 건축이라는 양식을 통해서 나타내려 했는지 설명해준다. 또 단순히 신앙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그 양식들이 당대의 신학, 철학 사조와 맺는 관련성도 설명해준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쉬운 설명 덕에 건축의 문외한인 사람도 어느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24강은 카노사의 굴욕과 아비뇽 유수라는 두 사건을 중심으로 어떻게 중세 말기에 교황권이 세속권력에 대해서 우위를 점하게 되며 또 몰락하게 되는지를 들려준다. 또 이 역사적 사건들이 오늘날 세속정치와 관계를 맺는 그리스도교에 던져주는 통찰은 무엇인지 고민한다.


25강은 중세말 교회가 힘을 잃게 되는 시기를 그리는데 이에 대한 교회 외적 요인들 –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혼란, 전쟁 – 을 다룬다.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에 이르게 한 흑사병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사고나 사회체계의 변화를,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100년 전쟁은 유럽대륙에 문화정치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개혁적 시도들과 영성에 대한 강조등 몰락해가는 그리스도교를 회복해보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중세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 독자, 출판사 모두 가톨릭이기에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일 수도 있겠지만, 중세말기의 개신교 종교개혁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약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가톨릭내 개혁적 움직임도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에필로그인 26강에서 바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서 저자가 택한 주제는 서양중세사에 대한 포괄적 개론이 아니라 ‘신앙과 이성의 조화’이기에 이 아쉬움은 다른 개론서에서 달래야 할 것이다.


26강은 저자가 밝힌 이 책의 주제인 ‘신앙과 이성의 조화’에 대해서 기독교 초기 교부시절부터, 아우구스티누스와 스콜라 철학을 지나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다룬다. 1장에서 25장까지 한번 다뤘던 것을 요약 정리하는 장이다. 철학과 신학을 모두 공부한 저자의 이력과 관심이 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개신교신학교에서도 ‘기독교철학사’라고 하여 신앙과 이성의 조화에 대한 개론격인 수업이 있는데 그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책에서는 “온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서 아퀴나스 신학에 대한 부분 (예를 들어 발출과 귀환이라는 주제) 이 더 긍정적으로 또 자세히 다뤄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책에 대해서 간단히 평하자면 2차 바티칸 이후 가톨릭교회에 대해 호의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인으로서 나는 가톨릭 교회와 그 신학에 대한 이런 개론서가 나와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단순히 피상적인 개괄이 아니라 전문적인 학자가 학문적 깊이로부터, 그 탁월한 입담으로 풀어낸 개론서라서 더욱 감사하다. 또한 단순히 맥락없는 백과사전식 역사사건과 인물들의 나열이 아니라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선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들려준 이야기라서 이 이야기가 한국 가톨릭 교회와 또한 한 하나님을 신앙하는 개신교교회에 들려줄 메시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 사상을 다루는 학자라면 전체적인 사상사의 손쉬운 정리를 위해서, 일반신자라면 믿는것과 아는 것의 조화로운 신앙을 위하여, 성직자들이라면 교회사의 자기비판적인 성찰을 위하여 일독을 할 것을 권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