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책은 술술 잘 읽힌다. 가독성이 뛰어난 책이다. 영화프로듀서라는 저자의 이력때문인지 기승전결이 선명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강력하다. 집짓는 과정을 묘사하다가 자신이 배운 성찰이라던가, 집짓기에 대한 철학이 유기적으로 잘 엮여 들어가 있어서 어느새 저자와 집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발견한 저자는 상당히 꼼꼼한 사람인 듯하다. 아내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지만, 건설현장에 나타나 상황을 체크하고 시공사의 일 진행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계약을 해지한 후에 공사장1층에 현장사무소를 차리고 한겨울에 현장을 직접 지키는 사람이 어디 평범한 사람이겠는가.
이 책은 인테리어 디자이어인 아내와 영화프로듀서인 남편 둘이 부모님과 함께 살 집을 지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왜 아파트를 떠나서, 또 신도시를 떠나서 구도심인 서울 후암동에 단독 주택을 짓기 시작했는지에서 시작해서 마무리된 4층 집에서 딸아이와, 부모님과, 또 방문한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과 공간의 가치에 대해서 들려준다.
책 구성은 아주 직관적이다. 집을 짓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느낀 네가지 감정인 희, 노, 애, 락 을 주제삼아 책을 크게 4부분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각 부분은 다시 각각 2장씩의 분량으로 구성된다. 집 짓는 과정을 독자가 따라가며 그들이 느꼈던 감정에 이입할 수 있게 만든 영리한 장치이다. 아마도 남편의 영화적 구성력의 영향인듯 하다.
먼저 기쁨이다. 누구든 전세값 인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리고 획일화된 아파트의 삶에서 벗어나서 삶이 느껴지고 활발한 구도심에서 주택을 짓는다는 생각을 한다면 가장 먼저 느끼게 될 감정이 기쁨일 것이다. 게다가 옥상에서는 남산을 보며 와인한잔을 하고 1층에는 작업실겸 또 미래에는 임대를 줄 공간마져 생긴다는 기대를 한다면 기쁨 말로 달리 무얼 느끼겠는가. 저자들은 "내가 아이와 살고 싶은 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아파트는 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는 결론을 가지고 구도심인 후암동에 땅을 산다. 그리고는 삼대가 같이 사는 4층짜리 건물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집을 지으면 10년을 늙는다는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 집을 짓기 시작하자 부푼 기대는 사라져 버리고 저자들에게도 분노의 감정이 주가된다. 원 거주자의 텃세에 공사기간이 늦춰지고, 시공사의 작업이 자신들의 설계도와 달리 관습대로 진행되는 것에 일의 진척이 늦어져 결국 한겨울 공사를 하게 된다. 어떤 작업을 해도 건축주들의 마음같지 않은 일을 보며 분노하는것 당연하다.
나는 집짓기에 관심을 가진 후에 이 책을 읽으며, 땅콩집으로 유명한 이현욱 소장의 팟캐스트도 함께 꾸준히 들었다. 이현욱 소장은 건축사무소의 소장을 하고 있기에 건축주의 시각으로 쓰인 이 책과는 관점이 약간 다르다. 물론 둘 모두 한국에서 지극히 상품화된 아파트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면에서는 같이 할만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건축주로서 이현욱은 이 책의 저자들같은 건축주들에게는 좀 마음을 여유있게 먹고 건축가와 시공사를 더 믿으라고 말할테다. 전문가가 아무래도 비전문가인 건축주들보다는 무엇이 더 좋은지 잘 안다는 근거에서이다. 반면에 이 책의 저자들은 내가 살집이니 내 삶의 패턴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거기에 100년이 지나도 허름한 집이 아니라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집을 지으려면 더 꼼꼼하게 체크해야 할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하튼, 이런 확고한 철학과 꼼꼼함, 그리고 어느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라면 이현욱 소장의 말보다는 이 책의 저자들의 조언을 따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결과가 분노요, 10년치의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하는 소모되는 1년이 될지라도 말이다.
골조공사를 마치고 이제 어느정도 집의 형상을 갖춘 건축물을 앞두고는 바로 기쁨이 찾아오는 건 아니다. 이제 저자들은 한겨울 공사를 앞두게 된다. 게다가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자신들이 직접 현장을 차려서 공사를 진두지휘한다. 각 단계에 맞는 업체들을 직접 선별해서 전체 공사를 이끌어 가게 된다. 수도가 동파되는 추위에도 공사를 직접하는 열정이라니. 아내가 전문가요, 남편은 출퇴근이 자유로운 영화업계 사람이라고 해도 다 설명이 되는 열정은 아니다. 이 한겨울 공사를 두고 저자는 애 라고 표현한다. 혹한기에 창문을 올리고, 이전에 부실하게 해놨던 공사들 덕분에 두번 세번 일을 해야 하는 과정이 슬픔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처음에 이 부분을 읽으며 역시 이현욱 소장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괜히 비 전문가가 너무 간섭해서 일을 이럽게 만든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실 어느정도는 저자들의 꼼꼼함이 일을 어렵게 만든것도 있을테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가장 중요한 집짓기인데 건축주들의 스타일에 맞추지 못한 건설현장의 구조적 문제가 더 큰듯 보인다. 모두다 획일화된 아파트짓기에 최적화 된 인부들이요, 작업스케쥴이요, 자재들일테다. 그런데 기성품이 아닌 맞춤 옷을 하나 만들어 내라고 하니 만드는 업체에선 여간 성가신게 아닐것이다. 그러니 그냥 하던대로, 관습대로, 지침은 무시하고 재단하던대로 해버리게 되는 것 아닐까. 이런 무언가 기형적인 구조에서 한명이 자기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불편하다고, 내입맛에 맞는 집을 지어내라고 고집을 꺽지 않으니 10년은 더 늙는 것 아닐까? 결국 이런 고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관습이 깨지고, 획일화된 산업이 자극을 받게 되는것 같다. 비단 집짓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어진 집은 저자들에게 삼대가 함께 사는집, 아이가 뛰어 놀아도 말리지 않아도 되는집, 아이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각 층을 뛰어나니며 해소할 수 있는집이 되었다. 아침에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1층으로 출근하는 집, 할머니가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는 장면을 일하면서 지켜볼 수 있는 집, 작은 마당이 있어서 아이와 함게 흙을 만지는 집. 지인들이 놀러오면 1층에서 파티를 하고 분위기가 익으면 옥상에 올라가 달과 남산을 함께 보는 집. 그런 집. 저자는 용기있는 자가 집을 얻는다고 말한다. 주저하지 말고 일단 저질러 보라고. 아이와 함께 어디에 살고 싶은지 고민을 시작하면 행동하지 않으면 못 배긴다고 말하는 듯 하다.
책을 읽고 나니 빚을 얻어서도 집을 짓고 싶다. 구 도심의 싼 땅을 사서 저렴하게 그러나 알차게 집을 짓고 싶다. 하지만 저자가 걸어놓은 환상에서 잠시 깨어날 시간이기도 하다. 저자부부의 경험은 놀랍고 도전적이지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일단 빚을 얻어서 공사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부부와 그 부모의 재산을 합친 재산은 이 책의 독자들 대다수의 수준보다 높을 것이다. 출근을 1층으로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성인은 몇프로나 될까? 또 집의 밑그림을 직접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시공사의 전문적인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자신감과 또 그걸 뒷받침하는 배경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공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겨울에라도 매일 현장으로 출근해 지키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책을 덮고 독자들은 또 매일 쳇바퀴처럼 출근해야 하고, 아파트에라도 울며겨자먹기로 살며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다그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상적이라거나 상류층의 특수한 경험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이들역시 재정적으로 힘들었으며, 자신들의 삶과 이상을 조율하기 위해서 눈물나게 투쟁한 이들이다. 또 이들이 독자들에게 모두 이렇게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들의 집에 대한 철학과, 사는 곳에 대한 고민, 아이가 살 환경에 대한 이상 이런것들을 같이 고민할 수 있다면, 독자들이 자신만의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면 이 책값은 다 하는 것일 테다.
이런 고민과 사고의 과정을, 그리고 나름의 투쟁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잘 풀어 낸 책이다. 동시에 그 고민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당장 내 집을 짓지 않더라도, 그럴 계획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1독을 권한다. 삶에 대한 고민,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주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