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김근수는 엘살바도르의
존소브리노에게서 수학한 해방신학자이다. 그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에 대해 적은 책이다. 저자가 밝히기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가지이다. 첫째, 개혁교황의 탄생이 가능하게 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연구하는 것이다 (1-3장). 둘째, 한국가톨릭교회의 위기에 대한 관심이다 (4장).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서, 20세기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소개하며, 해방신학으로의 방향을 전하며
이 책을 마친다.
2013년 새로운 교황선출이 전세계적 뉴스가 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나는 보스톤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중이어서, 예수회
출신, 게다가 남미출신 교황의 선출로 인한 흥분을 제대로 경험했다. 선출전까지
수업시간에 교수님들은 누가 선출될것인지, 콘클라베Conclave (교황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비밀회의)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소개했으며, 그가
선출되고나자 방송국에서 예수회 신학교수들과 인터뷰하려고 전화들이 쇄도해서 연구를 못하겠다는 말씀도 들었다. 그
중 그가 남미 출신이며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다는
데에서 그가 가난한 자들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내보일 것이라고 예상하시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리고 작년 여름 <찬미 받으소서>로 환경의 위기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내 놓으면서, 그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사역을 해나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1장에서 김근수는 해방신학자로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 일생을 소개한다. 그가 선택한 세 열쇠말은 ‘성 프란치스코’ ‘예수회’ ‘아르헨티나’이다. 이탈리아 이민자 노동자의 아들은 베르골리오 (프란치스코교황의 본명)는 2차대전 이후 아르헨티나 및 남미에 만연했던 빈부격차를 보며 자랐으리라. 또한 교황이 이름을 빌려온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화에 대한 강조,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에 주목한다. 그가 속한 예수회는 이제는 유명해졌다시피 가톨릭교회안에서 개혁적
분파에 속하며, 선교와 교육에 지대한 관심으로 특징지워진다.
* 이 책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성
프란치스코는 환경의 성인으로 불린다. 그는 자연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성자였다. 베르골리오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쓴 것은 평화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공동의 집인 지구환경에 대한 보호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나타낸 것이다. 이
책이 발간되고 나서 나온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는 환경위기에
대한 가톨릭적 대답인데, 그 책의 제목이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Laudato Si이다.
프란치스코 자신은 해방신학자가 아니지만, 그의 출생이나 신학적 영향, 강조,
관심은 그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제, 군사독재에 맞선 사제로 불리기에 충분할것이다. 그는 교황으로서 기록한 문헌들 <찬미받으소서> <복음의 기쁨>에서 계속해서 가난한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해방신학의 핵심 가치를 강조했으며, 신자유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2장과 3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타나게 된 직접 (2장), 역사적 (3장)인 배경을
다룬다.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베네딕토 16세의 자진사임과
그에 이어진 교황선거과정을 살펴본다. 그 자신은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졌지만, 베네딕토 16세 역시 종교간 대화라는 측면에서는 개혁적인 노력을
기울인 사람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김근수는 이 사임 사건과 베네딕토 16세의 말을 고찰하면서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라는 통찰을 끌어낸다. 다시 말해,
교황자리라는 것도 결국 사임가능한 인간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이 사건이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콘클라베과정에서 주도적인 관심사는 “개혁, 그리고 복음 선포의 강화”이었고
그 분위기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었다고 말한다. 2장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선거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독자라면 주의깊게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베네딕토 16세의 선출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 그리고 그 간의 로마 가톨릭의
분위기 변화 등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잘 기술해 놓았다.
3장에서는 좀 더 범위를 넓혀서 가톨릭교회안에서의 개혁적 전통을 (그리고 보수화의 움직임도 함께) – 레오 13세, 요한 23세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어 프란치스코까지 – 역사적으로 소개한다. 지난 근 백년넘는 시기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담은 이 장은 외부자의 입장에서 가톨릭교회와 가톨릭사회교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개신교 개혁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열린 트렌트 공의회 이후로 가톨릭 교회는 계속해서 보수화, 전통화 되어 왔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1891년 레오 13세가 공포한 <새로운 사태>로부터
시작된 개혁적 흐름이다. 이 문서에서는 당시 유럽에서 태동하던 노동문제에 대한 교회적 반응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있으나, 이런 개혁적인 움직임은
요한 23세의 선출과 그가 주도해 1964년부터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이어진다. 지금 시대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이들에게서, 2차 바티칸공의회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을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상당한 분량을 들여 공의회를 소개한 것에 감사하다.
안타깝게 그 이후 가톨릭교회는 내부적으로
다시 보수화됨으로써 개혁의 동력이 실종된 (오히려 후퇴한) 시기가
이어졌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바오로 6세, 베네딕트 16세 아래에서의 35년이다. 해방신학자인 김근수는 이시기 교황청이 해방신학을 억압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으로 이어지는 해방신학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해주고 있다 (김근수는 교황은 “온건 해방신학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복음의 기쁨>과 <아파레시다 문헌>에
대한 분석도 해주고 있다.
1-3장까지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를 낳은 가톨릭교회의 개혁적 전통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었다면, 4장에서는 이제 한국의 해방신학자 김근수의 고유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고고히 ‘개혁적으로 흘러온 세계 가톨릭교회의
흐름에 동떨어져 마치 갈라파고스 섬’과 같이 되어버린 한국 가톨릭교회에, 프란치스코 현상은 어떠한 질문을 던질 것인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불평등의 증대, 가난한자들에 대한 무관심
같은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성직자중심주의, 여성사제, 종교간 대화 등 교회내부의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 해방신학자로서의
고유한 목소리는, ‘가난한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라는 표현들에서 잘 드러난다. 어정쩡한
중간의 포지션이 아니라 편드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이들이 신과 독대할수 있다고
교회내의 민주화를 강조할 때는, 기존의 경직된 가톨릭위계질서에 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오히려 더 경직화되고 위계화 되어버린 개신교교회에 대한 경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톨릭의 자기 혁신 노력으로 김근수가 제안하는 것은 “신자와 함께
하는 제3차 공의회”의 개막이다. 교황이나 주교, 신학자들만의 공의회가 아닌 사제와 평신도들이 주도하는
공의회를 말이다. 저자는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교회, 민주화된 교회가 될 것이라
짐작한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천주교회의 과제를 검토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해방신학자 존 소브리노에게서
배운 제자가 쓴 글 답게 책 전체에 해방신학적 관점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런 관점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이해하는데 아주 적절한 렌즈를 제공한다. 그의 말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을 해방신학자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이나 설교, 문건, 그리고 행보들을 보면 온건해방신학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나역시 생각한다.
한가지 아쉬운 (그러나 이해할만한) 것은, 프란치스코를
이해하는 렌즈로 “환경”을 추가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이름을 차용한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연의 성인이다. 해,달,별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그의 찬송시 Laudato Si는 작년에 나온
교황 회칙의 제목이기도 하다. 물론 <찬미받으소서 Laudato Si>는 이 책이 나오고 일년 뒤에 나온 것이다. 다만, 그의 이름 선택에서 ‘환경’이라는
힌트를 얻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아쉬움이 따른다. 해방신학과 환경보전은 따로 떨어진 이유가
아닐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가난한자들이 가장 먼저 경험한다는 것은 가톨릭사회교리에서 꾸준히
언급되어온 가르침이다. 따라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한다는 것은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동시에 프란치스코 성인식으로 사고하자면, 자연과
기후, 그안에서 멸종되는 동식물 종들은 우리의 가장 약한 “형제”들이다. 그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한다. 해방신학과 환경윤리는 만날수 있을까? 일단 프란치스코교황은 그의
회직에서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해방신학자 김근수가 이 작업을 이어서 둘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책을 한권 내주었으면 좋겠다.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9198 교보문고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내포하는 세번째 의미로 "피조물의 보호"를 뜻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쉬운 점과는 별개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소개와, 로마가톨릭교회의 개혁적 전통에 대한 아주 좋은 소개서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 제2차 바티칸의 개혁적 가르침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도들에게
충분히 가르쳐지고 있는지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이책의 적실성은 한층 더할 것이다. 또한 외부자에게도 가톨릭사회교리와 해방신학에 대한 좋은 입문서가 된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개혁에 대해서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애매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저자는 표현도 선명하고
입장도 유보적이지 않다. 가톨릭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쉽사리 판단하기 일쑤인 개신교도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나역시도 개신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