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바이 욘더』는 일억 원 고료 제 4회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이자, 티빙에서 제작한 동명 드라마의 원작이다. 드라마는 이준익 감독, 신하균‧한지민 주연의 6부작 《욘더》란 드라마다. 드라마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책이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정판이 출간된 것이다. 구판은 2011년 나왔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개정판으로 재출간된 것은 드라마 공개와 함께 동반인기를 누리고자 하는 출판사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전면 개정판에서는 2022년 감각으로 문장과 표현을 세심하게 다듬은 것은 물론 저자의 짧은 후기를 추가로 수록하였다.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접한 사람들이 대부분 드는 궁금증.
‘욘더’가 도대체 뭐지? 이 용어는 작중 세계에서도 그 의미가 나중에 알려지게 된다. ‘욘더’는 가상공간이자 장소이자, 또 하나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픔도 헤어짐도 없는 완전한 천국, 욘더.’ 사람들은 그리운 연인 또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욘더로부터 온 초대장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주인공 김홀도 그렇다. 그는 죽은 아내, 차이후가 욘더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욘더에 가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김홀은 갈등한다. 그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기에 있을지, 아니면 욘더에 갈지.

책을 읽으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했다.
놀라운 하이테크의 신기술이 구현된 세상. 극단적으로 발달한 고도의 네트워크 사회. 사이버네틱 스페이스가 존재하고 포스트 휴먼이 등장하는 근미래가 책의 배경이다. 유비쿼터스로 모든 곳이 네트워크화되면서, 사람들은 핸디(네트워크 에어)라는 수단으로 다양한 기능을 활용한다. 심지어 극심한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수단까지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김홀의 아내 차이후는 말기 암 환자였는데, 그녀는 브로핀 헬멧을 쓰고 통증을 견딘다. ‘브로핀 페인 디스트랙션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환자는 가상현실을 통해서 진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이 같은 모든 설정들이 참신하고 기발했다. 2010년대에 이 세상을 구현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었다.
사이버 세상이 배경인 만큼, SF의 성격이 강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굿바이 욘더』는 SF 소설이란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 SF적 용어들과 배경이 주를 이루지만, 그것이 스토리의 핵심은 아니다. 소설은 오히려 문학성이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졌다. 이는 작가가 문학과 SF의 경계를 적절하게 조절한 안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SF가 낯선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절묘하게 맞췄다.
유비쿼터스로 모든 것이 통하는 사이버 세상. 신을 믿는 자들은 줄어들고, 아이를 낳는 이들도 갈수록 급감한다. 사이버네틱한 세계에서 구시대의 유물은 골동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 이 세상의 사람들은 추모조차 사이버 세상을 통한다. 죽은 자의 기억을 다운로드받은 인공지능 아바타를 만나며 그리움을 풀 수 있는 것이다. 한데 심지어 ‘욘더’는 단순히 추모의 공간 정도가 아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 또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경지의 차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대가를 치르겠다는 사람이 분명 있지 않겠는가? 그 대가가 그 어떤 것이든.
김홀 또한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해서, 잊지 못해서,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 대가를 치를 결심을 하게 된다.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읽으니, 그의 선택을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의 고민과 갈등 역시. 그가 선택한 결과 또한. 결말을 읽고 김홀이 겪은 이 일련의 과정들을 돌이켜보며 생각했다. 소설은 한 가지의 주제를 강력하게 역설하고 있는 듯했다. 감정은, 인간의 감정은 결코 사이버화될 수가 없음을. ‘문학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하이테크하면서도 따뜻한 미래’라는 당시 심사위원의 평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덧
1. 책의 세상에서 KFC가 없어졌다고 나온다. 아니, 왜!!
2. 최첨단의 하이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로우테크의 삶을 선택한 이도 있다. 나도 선택한다면 로우테크를 선택할래. 난 아날로그가 좋다!
3. 가족에게 자살하는 장면을 일부러 보여주는 것은 최악이다. 이해가 안 간다.
인상깊은 구절
“그 시점을 놓치게 되면 인간이 기술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기술이 인간을 종속시키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요. 그리고 기술 발전이 일정한 선을 넘어 인간의 통제와 예측을 벗어나면 모두가 꿈꾸는 ‘멋진 신세계’가 올지, 아니면 기술만 살아남은 ‘완전한 파괴’가 오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파악한 거죠.”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