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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게님의 서재
  • 등대
  • 미야모토 테루
  • 16,650원 (10%920)
  • 2023-05-17
  • : 776


한자리에서 침묵한 채, 바다를 나아가는 사람들의 생사를 지켜봐온 등대가 고헤에게는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한 인간으로 보였다. 하늘색과 바다색과 안개 속에서 등대는 스스로의 빛깔을 지우고 숨죽인 듯 보이지만, 해가 지면 어김없이 불을 밝혀 항로를 비춘다. 숱한 고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인간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저것은 조부다. 저것은 조모다. 저것은 아버지다. 저것은 어머니다. 저것은 란코다. 저것은 나다. 저것은, 앞으로 살아갈 내 아이들이며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다. 저마다 다채로운 감정이 있고, 용기가 있고, 묵묵히 견디는 나날이 있고, 쌓여가는 소소한 행복이 있고, 자애가 있고, 투혼이 있다. 등대는, 모든 인간의 상징이다. 보라. 이것이 인간이고 인생이라고 등대는 들려주건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301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어받은 중화소바집. 아내 란코와 함께 운영하며 가게를 지켜 나갔지만,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으로 큰 상실감을 겪은 고헤는 가게를 휴업한다. 그렇게 아내가 죽은 지 이 년, 책을 읽다 아내에게 온 1987년의 엽서를 발견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등대 순례를 했다는 엽서의 내용과 누가 왜 엽서를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한 란코의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네 반찬가게에 갔다 한켠에 걸린 재작년의 달력 속의 등대의 모습을 보며 이대로 계속 안에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고헤는 등대를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등대》는 아내를 잃고 큰 상실감에 빠진 고헤의 모습을 통해 상실을 끌어안으며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고헤에게는 등대란, 아내가 껴둔 엽서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성인이 된 자식들과의 어색한 거리감을 다시금 되찾아가는 과정이기도, 어떤 요리에도 완성된 맛 같은 건 없다는 아버지의 말을 통해 그 하나의 맛, 자신만이 가진 맛을 찾아나가며 재생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낮의 등대의 모습은 기억에 남지만, 밤의 등대를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불을 밝히며 이정의 역할을 하며 묵묵히 서 있는 등대의 모습을 통해 각자만의 의미를 찾는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등대》 속의 등대의 이미지와 비채서포터즈로 이전에 읽었던 《하얀 마물의 탑》 속의 등대의 이미지가 너무 대비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어, 읽는 입장에서는 이것 또한 하나의 스토리로 엮여져 더욱 인상에 깊게 남겨진다.

모든 인간의 상징을 표현하는 등대의 모습을 보며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등대의 빛이 가닿는 느낌이다. 잔잔한 듯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도록 등대가 길잡이가 되어줄 것만 같다. 불빛이 너무 가까우면 진짜 모습이 보이지 않듯, 너무나 가까이 있던 나의 일상의 반짝이는 소중함과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느끼는 짜릿함을 다시금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코앞의 비둘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너무 가까워도 보이지 않는구나. 휘황한 빛의 전구판은 너무 멀어서 처음에는 화살표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일이 숱하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딸, 아들, 몇 안 되는 친구.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는 멀리서만 봐왔는지도 모른다. 삼각형도 육각형도 멀리서 보면 전부 원으로 보인다. 아니, 너무 가까워서 진짜 모습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206

평온해 보이는데 실은 위험이 소용돌이치는 장소도 있다. 무서워 보이는데 막상 들어가보면 즐거운 일이 많은 장소도 있다.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고 한숨짓는 사람도 많은 행복과 만나왔을 터다. 다만 행복이라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222


[비채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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