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가면 꼭 미술관을 방문한다. 자연스레 중세 미술도 스쳐보았다. 처음엔 인상주의나 고전 미술에 비해서 아름다움에 어두움이 드리운 ‘암흑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자꾸 들여다보니 정해진 규칙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고민한 흔적들이 보였다. 그 흔적 앞에 서면 미소가 지어졌다. 한계를 극복하려 찾아 헤맨 붓질과 표현에서 빛이 났다. 중세가 이제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도 사람은 여전히 자신다움을 찾아 빛을 밝히고 있었다. 점점 중세 미술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생겼다. 관련 서적도 찾아 읽었다.
이 책도 그 와중에 만났다. ‘암흑기’라는 편견으로 나도 어둠에 묻힌 보석을 놓칠 뻔했기에 책 소개가 반가웠다. 중세는 알면 알수록 다른 역사와 마찬가지로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십자군 전쟁처럼 맹신에서 행해지는 폭력도 여전하고, 사람을 죽기까지 호도하는 여론몰이도 마녀사냥이라 말하곤 하지 않나. 여전히 삶은 한계와 모순으로 암울하다. 그 암울이 중세의 암흑과 본질상 다르지 않다. 그 가운데 자신다움을 지키려는 노력을 발견하면 위로가 되지 않지 않을까?
불임 여성이 마녀라는 편견으로 억압되기도 했다지만, 책에 소개한대로 그런 편견에 굴하지 않고 다양한 의학적, 종교적, 심리적 방법을 찾아 방법을 간구하려 한 이도 있었고, 다들 자기 권력과 생명 지키기에 급급할 때 죽어가는 환자 옆을 떠나지 않는 의사들도 있었다. 오히려 자기 것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이들보다 수용하고 도전해 왔던 이들이 어떻게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역사로 보여준다.
저자가 전공학자인지라 중세에 관해 잘 몰랐던 이야기를 알차게 소개해준 점은 좋았다. 설명은 쉬웠으나 내용은 뻔하지 않았다. ‘중세에 관해 이렇게 생각했겠지만, 이런 점도 있었다. 현대와는 이런 면에서 통한다.’를 설명한 중세 입문서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다만 중세에 있었던 사실이 현재에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일지는 독자가 고민하도록 남겨두었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과 통찰도 좀 더 풍성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중세에 대한 암흑을 걷어내고 앎의 빛 가운데로 나오길 원한다면 첫 시작으로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