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아래 사는 시인 복효근이 <밑불이라는 말이 있다>라는 이름을 걸고 산문집을 냈다. 늘 지나치게 겸손한 그는 ‘범실잡록’이라는 부제를 달아 ‘산문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눌렀다. 산문집이면 어떻고 잡록이면 또 어떠리. 그 짤막한 산문집 안에 그는 자신의 사는 모양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모습이 그려질 정도이다. 대부분의 글은 고개가 끄덕여지고 가끔 웃음도 번지는 글이다. 그러다가 죽산댁 댓돌 위의 흰 고무신 얘기에서 한껏 스산해진다.(55쪽, ‘꽃할머니’, 58쪽, ‘흰 고무신에 대한 소고’) 이윽고, 한밤중에 어머니의 젖은 속바지를 빠는 이야기에 이어지는 시 ‘당신’을 읽으면서는(77쪽, ‘어머니의 젖은 바지를 빨면서’, 82쪽, ‘당신’) 기어이 안경을 벗고 책을 덮고 말았다. 흐린 눈을 닦고, 안경을 닦고도 한참 뒤에야 다시 책장을 열 수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의 시를 흠모했고, 지리산 자락에 사는 그의 살림을 동경했다. 그런 그가 내내 부러운 것은 나뿐만 아닌가 보다. 그러니 이런 시를 쓰지.
<누명>
내 사는 꼴
얼마나 누추하게 보였으면
꽃이 많이 피어서
갖은 새소리 가까이 들려서
나더러 부자라고 아닌 누명을 씌우고 갑니다
억울하진 않았습니다
(181쪽, ‘누명’)
아, 나도 저런 누명 한번 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