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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까운 방
  •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 강지영
  • 10,800원 (10%600)
  • 2015-09-24
  • : 61

강지영 작가의 새 작품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를 읽었다.


전염병 페인플루가 창궐한 세상, 바이러스는 치명적인 변이를 일으켜 죽은 사람들은 모두 좀비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안에 틀어박혀 문을 잠그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게 최고다. 하지만 사방에서 좀비가 덤벼든다 해도 반드시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들,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근대는 자신의 창작 애니메이션을 상영해야 하고, 초과는 갓난아기 시절에 헤어져 지난 십 년간 만나지 못한 딸 유이에게 수혈을 해줘야 하며, 숙영은 당장 출산하려는 딸을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길을 막는 건 좀비만이 아니다. 사이비 교주의 지시를 받은 경비업체 조이캡 직원들은 감염자와 무고한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도륙한다. 그래도 그들은 죽어라고 갈 길을 간다. 동료가 좀비가 되는 것을 지켜보며, 숫돌로 좀비의 머리통을 깨부수며, 총알을 발등으로 받아내면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도 빨라진다. 숨이 가쁘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결말. 잘 쓴 이야기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겪는 경험이지만, 이 책의 여운은 마침내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턱 하니 가슴에 얹힌다. 근대와 초과와 숙영은 결국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도 있다. 살아남았지만 축하할 수 없고, 괴롭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산다는 일의 민낯이지 싶다. 또한 그러기에, 살아남지 못했다고 반드시 실패했다고도 할 수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죽음의 가치가 아닐까.


제목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어릿광대다. 서커스 무대에서 커다란 공을 굴리는 어릿광대. 공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발은 자꾸만 미끄러지려 한다. 때로 우리는 공에서 미끄러져 떨어지지만 공연을 멈출 수는 없다. 다시 일어나 공 위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들은 멋진 재간을 뽐내고 관객의 환호를 얻는다. 하지만 그건 선택받은 소수의 특별한 경우일 뿐, 대부분은 마치 어두운 숲 속에서 혼자 공연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공연, 하지만 감히 누가 별점을 매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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