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언어학자인 저자는 정년을 2년 앞둔 68세에 예상치 못한 일을 겪는다.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언어학 연구자로 걸었던 길에서 이탈하여 퇴임을 당길 수밖에 없었다. 논리적인 수학자로 대학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던 남편 푸보가 정년퇴직 후 단기 기억 상실에 이어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증상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퇴직 후 꽃을 가꾸고 책을 읽으며 등산과 산책을 즐기는 생활인으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던 그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푸보는 알츠하이머 진단 후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증상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혼자서 정원의 화초를 가꾸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책을 읽던 그의 삶은 자주성을 잃어 타인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아내는 집에서 홀로 생활하기 어려워진 남편을 돌보기 위하여 연구직에서 물러나 남편의 전업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일상은 파란이 많았다.
깊어가는 남편의 병세 앞에서 간병인은 무력감에 젖는 일이 잦아졌다. 저자는 남편이 예전부터 좋아하던 분야부터 시작하여 그의 관심을 돌리려 하였지만 그의 지적 활동을 돕는 데에도 한계가 따랐고, 좌절의 경험만 쌓여 갔다. 부엌 수납장 안의 그릇을 꺼내느라 달그락거리는 소리, 화장실 휴지를 말아 챙겨 주머니에 욱여 넣는 일 등은 감당하기 힘든 간병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저자는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일들이 벌어져 이를 수습하느라 말라갔고 불면증에 우울증까지 진단 받았다. 남편의 병세가 극심해지자 아내는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마음속 갈등을 하다 그를 요양 기관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평소에는 요양 기관의 보호를 받고 응급 상황에는 보호자가 책임지는 형태의 공동 간병 방식을 택하였다. 푸보의 요양 기관 입소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은 공교롭게도 저자의 생일이었다. 딸과 함께 하루 이야기를 나누며 단란한 가족의 무탈한 일상이 행복임을 떠올린다.
요양기관으로 면회를 가서,
“내가 누구야?” / “당신 이름은 뭐야?”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띠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은 슬픔으로 미어졌다.
‘치매는 걸리기 전으로 절대 돌이킬 수 없는 병입니다. 따라서 모든 증상이 곧 하나의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주치의 말대로 치매 환자의 증상은 단계적으로 나타나고, 말기에는 인지 능력과 생리 능력이 완전히 퇴화하여 누워 식물인간처럼 생활하는 순을 밟을 것이다. 나이 일흔 살에 육신을 갉아먹던 병을 고쳐 생활에 어려움을 덜 수 있다면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수술해야 했다. 저자는 그동안 고통 속에 무지외반증 교정 수술을 받았고, 족적근막염 치료도 병행하였다.
고령화 사회에 노인이 노인을 돌보다가 돌봄을 받는 이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경우를 자주 봤다. 치매를 앓는 남편을 전적으로 아내가 돌보는 일은 연로한 사람에게 가혹한 형벌처럼 여겨진다. 독립하여 자신의 길을 걷는 딸이 엄마에게 전하는 메시지에는 엄마의 짐을 나눠지는 기관과의 공조를 담았다. 저마다 존엄한 개체로 태어난 우리는 타인의 삶을 지키려다 자신의 삶을 그르치는 시간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퇴행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