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딸이 서른셋에 엄마가 돼 아들을 키우느라 애쓰며 지낸다. 외손자가 태어난 후 단조로운 가족은 사랑을 쏟을 대상을 만나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첫딸 출산 후 복직하여 일하느라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다. 엄마와 함께 지내며 어리광을 부릴 때에 딸은 가고 싶지 않은 보모 집에 맡겨졌다.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생떼를 쓰는 아이를 뒤로한 채 걸음을 바삐 놀려 일터로 향하였다. 퇴근하면 부모를 기다린 딸이 함께 놀아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할 일이 많다며 가만히 있으라고 곁을 주지 않았던 게 마음에 멍울로 남아 있다.
예순넷인 남편은 퇴직 후 초등학교 앞, 등굣길 교통 봉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은 오지랖이 넓어 이웃에게 관심이 많고 무엇이든 공유하고 싶어 한다. 학생들과 오래 생활해서인지 아이들을 좋아하여 아침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가이 맞는다. 섬김의 나눔을 중시하는 남편은 실속 있게 살지 못하여 아내의 타박을 들을 때가 있지만 괘념치 않는다.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골수에 사무친 효행을 실천하는 남편이 먼저 떠올랐다. 물음을 던지기 전에 효도는 조건을 따지지 않고 행하여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몸을 챙기지 않고 일하였다. 불사조처럼 강단진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는 유전자를 타고났다. 그는 직장 일을 마치고는 아내가 운영하는 슈퍼에서 다시 일하느라 고단할 텐데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일하는 가장으로 열심히 사는 게 무엇인지 입증한다. 아버지는 딸들에게 배운 것이 없어 육체적 노동으로 고생이 많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강하였다. 아버지는 못 배워 고단한 생활을 감내하면서도 딸들에게 많이 배워 세상을 넓게 보고 편히 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로 혼자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저자의 부모는 베이징으로 무술 유학을 간 딸이 석사 학위를 마칠 때까지 군소리 없이 지원하였고, 둘째 딸이 재수 끝에 서울대 미대로 진학하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못 배운 한은 오래 간다고 하지만 아르바이트 하나 안 시키고 딸 둘을 공부시키기 쉽지 않았을 터인데 부모는 학비와 용돈을 군소리 없이 충당하였다.
386세대의 부모는 할머니 세대를 봉양하고 자식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생활하였지만, 자식 세대에게 손 벌릴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세대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는 속담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부모는 끝없는 사랑과 정성으로 자식을 키웠지만, 부모 생각하는 자식은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처럼 여기던 자식도 성장하면서 부모와 거리를 두는 게 현실이다. 자기 앞가림도 힘든 각자 도생하는 시대에 부모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길어진 노후에 부양의 책임이 지워지면 어쩌나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슬픈 현실이다.
길어진 노년에 부모 역시 스스로 책임질 만한 여력을 갖춰야 자존감 있게 생활할 수 있다. 저자의 부모는 젊은 시절, 밤낮 없이 일하여 모은 돈을 잘 관리해 검약한 생활로 부를 이룬 부모는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로 노후를 대비해 두었다. 부모는 건물주로 다달이 들어오는 월세가 있어 큰일을 겪는 이변이 없는 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 부양에 대한 짐을 덜 수 있어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딸의 마음 한쪽에서는 부모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효심이 꿈틀대고 있는 듯하다.
부모가 바라는 효도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적적한 노년에 부모는 아침에 걸려 오는 짧은 안부 전화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생일에 전하는 꽃 한 송이에도 기쁨의 미소를 띤다. 그들의 행복은 큰 보상이나 값비싼 선물에 있지 않다. 다만 자식이 자신을 잊지 않고 하루 중 잠시라도 마음을 써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물질적인 효도에 한정 짓지 말고, 정서적 지지와 따뜻한 관심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로 효를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럴 때 부모의 마음에는 조용히 등불이 하나씩 켜질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부모가 늘 곁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미루며 살고 있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제라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부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밥을 함께하는 시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제 좀 살 만하니 부모와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지.’
마음먹었는데 예기치 않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모를 그리워하며 회한에 젖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있다.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회한 섞인 말이 흰소리가 아님을 안다.
효도는 내일로 미루는 다짐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사랑의 언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부모를 향한 작은 관심과 따뜻한 한마디면 된다.
오늘 하루 부모의 안부를 묻고,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웃으며 마음을 나누는 소소한 행동이 쌓여 행복을 이룬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상의 효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련의 행동은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큰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