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바깥 공기를 확인한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로 떠오르는 창문은 외부 세계로 향하는 시선이자 통로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피아노 연주자가 되고 싶었던 꿈을 떠올리며 프레드릭 차일드 하삼의 ‘즉흥곡’ 그림을 모두로 창문을 매개로 한 그림을 소개한다. 열린 창 너머로 나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인은 향기로운 꽃들이 에워싸는 가운데 피아노를 연주한다. 악보 없이 자유로이 연주되는 즉흥곡은 사방으로 퍼져 경계를 허무는 듯하다.
창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샤갈은 열린 창을 통해 환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며 파리의 삶을 즐기려 애썼다. 그는 첫눈에 반한 뮤즈 벨라를 향한 사랑을 캔버스에 담으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구애해 결혼한 뒤 다양한 색채를 활용한 초현실적 그림을 그렸다. ‘창문을 통해 본 파리’ 작품은 창문을 통해 사랑하는 여인 벨라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유가 억압된 채 차별을 겪는 지난함 속에서도 그녀와의 유대와 결속으로 색감을 살린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다.
열린 창 너머 동일한 복색을 한 몰개성의 군중이 창문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뭔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르네 마그리트의 ‘포도 수확의 달’은 자기 본연의 색을 잃어가는 현대인을 표현하는 듯하다. 마티스가 4년에 걸쳐 완성한 ‘대화’ 속 창문 밖의 풍경과 실내의 풍경이 겉돌아 보이는 이유는 부부 사이의 갈등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창문 너머 풍경은 나무와 샘물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는 달리 같은 공간에서 결이 다른 두 사람이 거리를 두고 있을 뿐이다. 창문 너머 푸른 지중해를 품고 살아온 마티스는 아내보다는 예술을 더 사랑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그림에 탐닉하였다.
달리는 어머니를 여의고 여동생에게 많이 의지한 여동생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 속 여동생이 열린 창으로 걸림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 꿈을 펼치길 바라며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듯하다. 죽은 형을 대체하여 세상에 온 달리에 대한 부모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는, 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달라는 바람을 그림에 담았을는지도 모른다. 달리는 예술 활동의 뮤즈인 갈라를 만남으로써 아버지와 절연하고 그녀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으며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다.
방해 없이 한 사람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게 뒷모습이라고 하는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프리드리히의 걸작으로 자연 앞에 미미한 존재인 인간의 고독과 불안, 겸허한 삶의 태도 등이 연상된다. 방랑자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짙은 안개 바다로 뒤덮인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빛이 새어 나오는 창가로 가서 편지를 읽는 소녀를 떠올리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를 본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이에게 빛은 별다르지 않은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로 자리하기도 한다. 설렘으로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소녀의 마음을 헤아리며 밝은 빛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영상을 새긴다. 빌헬름 하르메스회가 그린 ‘실내의 여성’은 가식적이지 않은 진실에 다가서고 싶은 화가의 마음을 담았다. 세상의 오욕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으로 세상을 살다가고 싶은 바람은 내면 깊숙이 자리한 천연의 마음에서 흘러나왔으리라.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드넓은 바다를 걸어 건너는 소녀가 보이는 ‘도망치는 소녀’는 집을 벗어나고 싶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음을 담았다고 하니 집이 또 다른 억압의 공간으로 자리할 수도 있음을 안다. 바람기 많은 아버지의 외도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무력한 어머니를 보면서 불안은 커졌고, 불안은 창작의 모티브로 작용하였다. 책을 읽는 할머니 뒤, 창문 너머에 서 있는 소년을 그린 야곱 브렐의 ‘창문 뒤의 소년과 함께 책을 읽는 할머니’는 책에 집중하는 할머니가 읽고 있는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 하는 소년의 호기심을 담으려 했던 듯하다.
캔버스에 등장하는 선과 옅은 색으로 채워진 그림으로 ‘창문’ 시리즈를 그린 아그네스 마틴은 아래와 위 창문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여백의 미를 담으려 했던 것은 아닐는지........우리나라를 떠나 프랑스로 유학을 간 김환기는 ‘영원한 노래’를 통해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책가도의 전통적 의미를 녹였다.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 아래 묵상하는 수도사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며 미술관을 찾지 않아도 명화에 얽힌 서사를 들으며 감상한다. 창문을 매개로 한 그림과 작가의 삶을 구성지게 엮어 세상사 안팎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밀한 관찰자로 삼촌의 작품을 마지막에 넣어 작품 속 창문과 공간을 수렴하였다. 살다 보면 삶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고, 돌연한 일에 발목 잡혀 지난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어떤 것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예술 작품은 번뇌로 들끓는 마음을 식혀 자기 정화에 이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