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역사의 진실을 드러낸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먹고 살기 어렵다는 유혹, 심부름을 가다 납치된 소녀들, 부모에 의해 팔려 간 아이들은 군인들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끌려갔다. 그들은 강제로 낯선 땅의 위안소에 수용되어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흐르는 편지』 속 열세 살 금자는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속아 군용 트럭에 실려 갔다. 도착한 곳은 공장이 아니라 지옥 같은 위안소였다. 위안소에 수용된 위안부는 성적 노예로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의 욕정을 푸는 도구로 영혼을 유폐한 채 지내야 했다.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23번 번호를 받고 민간인이 운영하는 위안소에 발이 묶여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갈 수 없는 마음을 담아 흐르는 물결 위에 마음의 편지를 쓴다.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심장이 생기기 전에…….’
몸과 영혼은 상처로 성한 곳이 없지만, 마음은 삿된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금자는 정액받이인 삿쿠를 씻을 때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강물에 편지를 띄운다. 그 편지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소녀가 인간으로 남으려는 의지의 증거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출구였다.
하루에 열다섯 명 이상의 남자를 받아 그들의 욕정을 풀어 줘야 하는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군인을 받아야 했고, 갖은 욕설과 폭행, 모멸을 견뎌야 했다. 또래 소녀의 묵음을 목격하고 다른 위안소로 이동되는 위안부를 볼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은 톺아만 갔다. 고향으로의 회귀는 어머니의 품을 잊지 않으려는 간절함에서 기인하였다.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도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군인들은 줄을 섰고, 군인이 위안소를 찾지 못하는 경우, 차출된 성적 노예는 부대 주둔지로 이동해 그들의 욕정을 채워야 했다. 총을 맞고 선홍빛으로 물들어 죽어가는 은실을 보며 불안과 공포는 극에 달하였지만, 금자는 속수무책이었다. 강물 위로 흐르는 글자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역사적 증인으로 극악무도한 일제의 만행을 드러내고 싶은 바람을 흐르는 편지에 담았다. 그녀의 소리 없는 절규와 편지는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가 단순한 피해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회복을 향한 증언임을 보여준다. 고통 속에서도 편지를 쓰는 행위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삿쿠를 씻으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던 소녀는 강에 혼자 남겨져,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라고 말하며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마음을 응시한다.
갖은 술수에 넘어가 위안소에 강제 동원된 위안부들은 군인들에게 시달리며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고대하며 고향과 더 멀어지지 않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다. 사위어 가는 생명의 불꽃을 부여안고 마음을 다잡고 하며 지난한 시간을 감내한 지옥도의 일면은 씻기지 않은 능욕의 또 다른 풍경이다.
강물 위로 흘러간 편지는 단순한 울부짖음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다짐이자 우리에게 전해진 외침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그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의 진실을 잊지 않고 증언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에 기꺼이 함께해야 한다. 『흐르는 편지』는 고통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삶을 향한 간절한 외침이다. 소녀가 남긴 편지는 오늘의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의 짓밟힌 존엄성 회복을 위한 역사적 복원에 적극적으로 함께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