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순간부터 생명체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끝을 알 수 없기에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은 더한다. 1년 전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던 이모가 세상을 떴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이 시작되었다. 이모는 중증 치매를 앓다 세상을 뜬 큰오빠를 가슴에 묻은 지 2년도 채 안 되어 폐암 진단을 받고도 의연하였다. 이제 환갑 넘긴 아들이 먼저 갔는데 호흡기를 달고 연명 치료하는 대신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을 붙들고 기도하던 이모는 설을 사흘 남겨두고 피안의 세상으로 갔다.
뜻밖의 임신으로 아들을 낳은 싱글맘 해들리는 미래를 두려워할 시간에 오늘을 살자는 신조로 새로운 삶을 설계하였다.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수련 과정을 거쳐 가정 간호를 전담하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들과 함께 살아야 했기에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데 나은 방법으로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걸으며 환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과 가정 간호의 규칙을 따르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도 환자와 연대하기도 했다. 고령자로 요양원에서 누군가의 돌봄에 의존하여 십 년 넘게 머물다 세상을 뜨는 경우가 흔한 농촌의 장례 풍경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나이, 죽는 복을 타고 나야 집에서 사나흘 앓다 죽음을 맞는다지만 뜻대로 안 되는 인생사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케이크를 먹어요.”
마흔에 원인 불명의 폐암에 걸려 가정간호를 받는 엘리자베스는 요가 선생으로 일하였다. 나이에 비해 앳된 환자는 마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으면서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요가 강사로 일하였던 환자가 식이장애를 앓으며 몸매를 유지하기 위하여 애썼던 간호사에게 먹고 싶은 것은 먹으라고 하였다. 하고 싶은 일을 다음으로 미루고 아등바등 살다 생이 끝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할 일 있으면 해요. 하지만 계속 내 간호사로 둘 거라고 장담하지 못해요.”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앓는 할머니가 해들이게 건넨 말이다. 간호사에게 벽을 치고 있는 완고한 할머니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환자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말기 암 환자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샌드라는 극심한 통증을 조절하며 집에서 임종하기까지 호스피스 간호사의 도움으로 잠깐이나마 삶다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며 고마워했다.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는 형국에 삶이 흐르는 대로 내맡길 수밖에 없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레지를 돌보았던 리사는 레지가 세상을 뜨고 오래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리사를 지켜주지 못하였다는 자책과 시어머니 바베트를 평온히 보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해들리는 힘들었다. 이를 지켜 본 동료의 제안으로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것이 우선임을 깨닫고 환자를 대하는 방식을 배워 과하게 감정을 이입해서는 안 됨을 알아차렸다.
미혼모를 선택하고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며 만난 열두 명의 환자에 대한 기록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죽음을 향해 가는 모두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열어준다. 태어난 자는 모두 죽는다는 공평한 인생의 질서를 떠올린다. 언제가 될지 모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삶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순연함으로 지금 이 자리에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