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성원과의 수평적 위치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의 소리를 경청하는 가운데 소통과 공감 능력은 길러진다. 소통 부재로 부정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차별과 불평등은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공간을 달리한 아일랜드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여성적 차별은 비민주적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 정서적 학대와 아동 학대, 고압적인 태도로 자녀를 돌보는 일 등에서 남성 중심의 완력이 느껴져 마음에 댓돌을 얹은 것처럼 울울함이 더한다. 소통보다는 일방적인 생각대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뜻을 관철하는 남성의 이기심이 불협화음을 낳는 단편 소설을 읽으며 자유로이 들판을 거닐 날이 올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유치한 맹세로 마거릿과 결혼을 약속했던 사촌은 사제의 길을 걷기 위하여 그녀를 떠났다. 상대의 일방적인 이별로 버림받은 마거릿은 혼자 아이를 낳았지만 돌연사한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마거릿은 성직 생활을 하던 사제가 죽은 뒤 그가 남긴 집에서 생활하며 그와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회한에 젖어봤자 소용없음을 직시한다. ‘퀴큰 나무 숲의 밤’에서 마가목으로 불리는 퀴큰 나무는 기르기 쉬워 정원수로 많이 심어졌고, 계절마다 다채로운 빛깔로 물들어 개성을 드러낸다. 생명을 지켜준다는 마가목에 대한 믿음과는 달리 활활 타오르는 생명 의지를 함의하는 마거릿의 말에는 지난 사랑에 대한 회한을 거두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섰다. 사랑에 집착하기보다는 새 생명을 잉태함으로써 신경을 모으고 정성을 보태고 싶은 유기적 생명체를 안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였다.
결혼 후 남의 집으로 가 살 딸은 가르쳐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은 ‘작별 선물’ 속 아버지의 지론이다. 공부를 잘했던 유진은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집에 남겨진 딸은 어머니의 묵인 아래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였다. 아버지의 성적 노리개로 살던 유진이 아버지의 말을 판 돈으로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하여 길 위에 섰다. 걸어보지 않은 세계를 찾아 서툰 걸음을 옮긴 그녀를 안전하게 지켜줄 문은 존재할지 확언하기 힘들겠지만, 괜찮지 않은 시간을 괜찮지 않다고 당당히 말하며 살아갈 날이 오기를 바란다.
‘푸른 들판을 걷다’ 속 신부는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순리를 따르는 삶을 지향한다. 한때는 롤러의 딸을 사랑하여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였지만, 신부는 세속적인 삶과는 거리를 두고 하나님의 제자로 살아갈 의지를 강화하였다. 사제는 자율 의지로 성직자 역할에 충실한 소명을 받들고 살면서 갈등하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하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으며 자신을 달랜다. 감정 표현에 서툰데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젬병인 사내는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꿈속으로 들어오는 황홀경을 겪을 때도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흐른다. 용기를 내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하지 못한 사내는 그녀를 잃고 나서야 회한에 젖어 참담함을 술로 달래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여인이 ‘검은 말’을 타고 그의 들판으로 와 풀을 뜯기를 바라며 비현실적 꿈속 세계를 맴돈다.
‘당신이 딸한테 화풀이한 게 유감스러울 뿐이야.’, ‘그뿐이야.’
비밀을 품고 살던 ‘삼림 관리인의 딸’의 마사는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남편이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하자 숨겨왔던 비밀을 폭로한다. 다른 사람의 씨앗으로 수태된 딸을 출산한 사실을 숨기고, 윤리적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한 마침표를 찍기라도 하는 듯 어리숙한 아들이 불을 질러 집은 불탔다. 큰불로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잿더미로 변해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사는 가벼움을 느낀다. 면죄부가 적용되지 않아 죗값을 치르게 되더라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마사의 용기가 불러올 파장은 크겠지만, 그녀는 비굴하지 않을 용기를 내었다.
먹고 싶은 과일을 함께 나누며 정을 두텁게 하는 관계는 서로 간에 친밀감을 더한다. 누구에게도 나눠 주고 싶지 않은 오렌지를 혼자 까먹고, 어린 소년에게 돌아갈 흰 빵을 돈을 더 주고 사버리는 중사는 약혼녀를 외면하고 계산적 의도로 결혼을 결심한다. 이기심으로 상대에게 가해지는 학대에 쾌감을 느끼며 타인을 통제하는 ‘굴복’의 장본인은 자기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이기심을 극명히 드러낸다. 굶주린 아이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를 회복함으로써 이기심을 향한 욕망에 굴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선택 없이 결정된 채 세계로 나와 소속된 공동체의 관습을 따르며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쓰며 살던 시절이 생각난다. 배움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당연시 여겨 왔던 일들의 부당함을 깨닫고는 감내하던 생활 습관에 제동을 걸며 무례한 대우에는 맞서며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찾았다. ‘물가 가까이’ 가고 싶은 할머니는 바다에 가고 싶은 바람이 실현되었을 때 씻을 수 없는 모욕과 함께 허탈함이 돌아왔다. 바다를 보고 돌아오기로 한 시각에서 5분이 늦었다고 자신을 혼자 버려두고 집에 가려 했던 남자와 평생 함께 살며 회한은 쌓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처럼 마음이 통한다고 여기며 살던 사람도 속내를 알기 힘든 것처럼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 없이 가정생활을 지속하는 어려움을 함의한다. 두려움에 바다를 다시 찾을 생각을 거두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단조로운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날은 요원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의 손을 선뜻 잡기 힘든 불신은 깊기만 하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으며 답하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자유로이 내비칠 수 있는 유연한 태도가 쌓여갈 때 부부 관계는 발전해 갈 것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