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 경보 아래 책을 읽는 것마저도 편치 않은 시간에 소설을 읽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선량한 사람의 사업이 번창하여 수익이 커지자 부당한 방법으로 손에 넣은 양조자 일가를 파멸로 이끄는 과정은 괴기스럽다.
‘밭도랑을 베게 하고 죽을 놈’
이라는 속담은 용서할 수 없는 악인에게 퍼붓는 저주를 담고 있다. 선의의 피해자가 죽어서도 용서할 수 없는 원한을 품고 ‘저주 토끼’를 만들었을 듯하다. 저주 토끼를 예쁘게 만들어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도록 유인한다. 저주 토끼를 가까이하는 이들은 죽음에 이르는 파멸의 구도를 띤다. 저주당하는 이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관찰 없이 자멸한다. 복수의 화신인 저주 토끼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예쁘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죽음으로 앙갚음하는 도식이 씁쓸함을 더하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의 신화는 오래 가지 않음을 극명하게 보인다.
구전되어 오는 옛날이야기에 상상력을 보태어 현대적 구성에 담은 아홉 편의 단편 소설 역시 괴기스러움에 공포를 욱여넣은 듯하다. 변기 속에서 ‘머리’가 나오는 이야기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던 시절 화장실에 박혀 사는 귀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색깔의 종이를 줄지 물음을 던지며 말을 건넨다던 귀신의 환청과는 달리 볼일을 보고 변기에 물을 내려도 계속 나타나는 머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던지는 남편의 한마디는 인간에 대한 경외와는 거리가 멀어 당혹스러움을 더한다.
자신의 고독을 이해하고 슬퍼하는 인간이 흘리는 눈물은 처연함이 묻어난다. 마을의 역병을 물리치고자 괴물에게 바쳐진 소년의 이야기 ‘흉터’는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의 설화를 모티브로 한다. 쇠사슬에 묶인 채 칠흑같이 어둡고 습한 동굴에 갇혀 지내는 소년의 목뼈에 단단하고 뾰족한 것을 쑤셔 넣는 이가 있다. 뼛속 깊이 고통이 흉터로 새겨진 소년은 무방비인 채로 잔혹한 고문에 시달리다 동굴로 내몰렸다. 갇힌 공간에서 위압적 권력을 행사하는 이에게 짓밟힌 소년도 어느새 청년이 되었다. 청년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을 탐색하다 탈출에 성공해 야생의 열매를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지만, 환골탈태하여 인간으로 자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청년은 괴물이 이끄는 대로 투견장의 개처럼 짐승을 상대하거나 사람을 상대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여 이겨야 했다. 청년은 상대와 싸워 승리해야 하는 압박의 사슬을 끊고 전쟁 같은 싸움터를 탈출하여 비극의 시원을 찾지만, 공중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고통으로 얼룩진 흉을 통증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 숙명에 내몰렸다.
야생 동물을 포획하기 위한 ‘덫’에 한 번 걸리면 헤어나기 힘든 상황에 빠진다. 덫에 걸린 여우의 머리에서 나는 금빛 액체를 굳혀 금덩이를 만들어 팔아 돈을 모은 아버지는 더 많은 금을 얻기 위하여 생명체에 상처를 낸다. 가정을 이룬 뒤에는 순도 높은 양질의 금을 모으는 데 쌍둥이 남매를 도구로 삼는다. 탐욕에 눈이 멀어 부성애까지 저버린 아버지는 자식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은 가장의 가정은 무너지고 모녀는 목숨까지 잃어 참척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백 세 시대라고 하지만 인간은 환갑을 지나면서 신체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게 된다. 유약한 인간을 보조하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개발된 인조인간의 도움을 받는다. 노후 된 인공 반려자는 새 제품으로 교체되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동안 자신을 보필하였던 1호가 주인을 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한 ‘안녕, 내 사랑’은 사랑이라는 숭고한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폐기되기 전 주인을 먼저 없애버린 인조인간의 습격은 디스토피아의 단면을 반영하는 듯하다.
돌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고 암흑 속에 갇힌 선생은 희미해지는 기억을 부여잡고 ‘차가운 손가락’이 가리키고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늪지대를 벗어나려 하지만 점점 늪으로 빠져 차체가 내리누르는 압박을 견디다 못해 자동차와 함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 차가운 손가락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행하던 선생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선생이 소중히 여기는 반지를 빼내어 취하며 설상가상의 상황에 놓인 선생을 방치한다. 예고 없이 오는 사고로 목숨을 잃고 인생의 향방이 틀어진 경우를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비정한 현실은 곳곳에 널려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의미 있었던 시간을 반추하며 지금의 고통을 상쇄하며 사는 삶에서 좋고 나쁨은 함께 존재함을 느낀다. 행복한 삶을 갈구하며 현재의 피로와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을 견딘다. 어떤 기대를 걸 수도 없는 상황에서도 찰나의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가기 위하여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의 물꼬를 튼다. 생존본능이 꿈틀댈 때마다 경각에 달린 삶의 시각도 조금씩 다른 빛깔로 주변을 물들인다. 망각의 시간과 만나며 망자들을 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는‘재회’의 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