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로 머리를 딴 소녀가 길 위를 걸어 어딘가로 향하는 그림 표지가 눈길을 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걸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은 낯선 공간으로 발을 내딛는 단란한 가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소녀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어떤 말도 없이 엄마의 먼 친척인 킨셀라 아주머니 집에 맡겨진다. 딸을 데리고 간 아버지는 어린 딸과 헤어지는 아쉬움은커녕 짐짝을 부리듯 부리고 휑하니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이유에서 남의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딸은 의아스러웠지만 덤덤히 받아들인다. 잘 지내고 있으면 다시 딸을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바쁘게 돌아서는 아버지를 봐야 했던 딸은 슬픔을 삼켜야 했다.
아동은 부모의 보호 아래 지내야 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의 집에 의탁한 채 지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어 친척 집에 맡겨져 눈칫밥을 먹었던 시절이 떠올라 소녀에게 마음이 쓰인다. 의견을 내세우면서 살아갈 힘도 없는 소녀는 어려서부터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이 상황을 감내하며 지내는 생존법을 터득해갔다. 낯선 환경에 놓인 소녀는 이전의 생활과는 다른 여유로운 시간에 마음을 놓지 못한 채 현재의 시간에 자신을 맡겼다. 소녀는 킨셀라 아주머니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며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헛되이 돌아갈 수도 있는 실수를 했다. 자고 일어난 매트리스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아줌마는 무안해하는 소녀를 위하여 방안이 습하다며 에둘러 말했다.
기존의 규범에서 이탈한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은 가정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맡겨진 소녀에게 자꾸만 애가 쓰인다. 자신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인내하던 시절의 슬픔은 누구도 작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은 데서 왔다. 맏이로 집안 살림을 맡아 할머니 봉양을 해야 했고, 세 살 아래 남동생을 돌보는 일이 의무처럼 지워져 빨리 어른이 되어 집을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컸는지도 모른다. 행여 닫힌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속내를 들키면 어떡하나 싶어 마음을 숨기고 지내야 했다. 욕구를 억누르며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던 시절이 떠올라 소녀가 자꾸만 신경 쓰인다.
킨셀라 아주머니 집에서 머무는 동안 소녀는 부부가 자신에게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 부드러운 손길에 적응하며 화목한 가정의 따스함을 누린다. 아이가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살뜰히 살피며 필요한 생필품을 챙기는 다정함은 소녀에게는 생경하다. 가족 구성원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시간을 채워 오느라 에너지를 소진한 부모에게 기대할 수 없는 소중한 정서를 느끼며 소녀는 부부의 아픈 과거까지 알게 되었다. 죽은 아들의 옷을 버리지 못하고 보관 중인 부부는 소녀에게 그 옷을 입혀 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피붙이의 흔적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가 불렀던, 소녀의 엄마는 때가 되어 아들을 출산하였다. 소녀는 동생의 출생 소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소녀를 맡아 기른 부부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소녀가 본가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동행하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몇 달을 떨어져 지낸 딸을 보고도 반색은커녕 잘 지냈는지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소녀는 반전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시큰둥한 반응에 서운할 법도 한데 내색하지 않았다. 맡겨둔 물건을 돌려받듯 딸을 마주한 아버지는 킨셀라 부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
는 아저씨의 말을 새기며 할 말은 하지만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소녀는 소설 말미에서 아빠를 부른다. 소녀를 집으로 바래다주고 걸음을 떼는 아저씨를 붙잡고 다시 아저씨를 따라 가고 싶은 바람이 소녀에게는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껏 따스한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는 소녀가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는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