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를 거듭할수록 물리적 공간 이동에 따른 만남의 유형은 다양해진다. 스쳐 지나는 일회성 만남에서부터 만남의 서사를 이루는 특별함이 시공간의 궤를 함께하는 인연이 있다. 와타나베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자신을 꼭 기억해 달라고 갈구한 여인,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는 운명 속 여인을 불러낸다. 죽음으로 현세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나오코에 대한 기억을 가슴속에 쟁여 빗장을 채우고 살아갈 뿐이라고 스스로 달래며 지냈지만, 선율을 타고 넘나드는 사랑의 추억을 사장한 채 지낼 수는 없었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나오코를 만났다. 길 위를 나란히 함께 걷던 나오코는 들판의 우물 이야기를 와타나베에게 전하며 초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원의 힘을 믿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갑자기 없어질 정도로 몹시 깊은 우물 이야기로 나오코는 죽음과 동행하는 시간 선택을 예비한 것처럼 언제까지고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와타나베에게 당부하였다. 생사 필멸의 이치를 채 깨닫기 전에 가까이 지내던 이를 예고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슬픔의 심연으로 이끈다. 죽음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중 하나이지만 준비 없는 이별은 걸음을 잘못 떼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헤어나기 힘든 상황에 육신을 가둔다. 삶 속에 동행하며 잠겨 있는 죽음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의 골을 깊게 한다. 잊히지 않을 기억을 끌어안고 사는 일은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할 몫을 해결하며 생존케 한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막역한 친구 기즈키,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기즈키는 와타나베와의 당구 경기에서 승리한 후 아무런 신호 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죽은 자는 삶이 멈춘 때로 남지만, 소통하며 우정을 쌓던 기즈키를 잃어버린 와타나베는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열아홉 살 와타나베는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슬픈 기억이 불에 탄 잔상으로 얼룩얼룩한 고향을 떠나 도쿄의 한 사립 대학에 진학했다. 나오코 역시 도쿄로 올라와 둘은 기즈키를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일상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기즈키의 죽음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육체적 관계를 맺었고, 말도 없이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춘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와타나베에게 편지를 부쳤다. 나오코가 있는 곳을 알게 된 뒤 와타나베는 그녀와의 만남을 재개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기거하는 요양원으로 그녀를 찾아 일상을 나누고 생각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고 그녀가 일상을 회복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어떤 징후를 보이지 않고 유언도 없이 자살한 열일곱 언니의 마지막을 덤덤히 말하고 있지만 서늘한 죽음의 이면에 자리한 불안은 그녀를 감싸고 휘돌아 마음의 병을 돋우었다. 나오코와 함께 생활 중인 레이코는 성숙한 어른으로 유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요양원 생활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레이코는 클래식 음악을 기타로 연주하며 자기 삶을 치유하며 나오코의 동행인으로 요양원 생활의 만족도가 컸다. 셋이 요양원 뒷산을 오르며 함께 나눈 이야기는 각자 지닌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외부 생활과는 단절되었지만, 요양원에서 생활인으로 안착하며 지내는 삶에 공감했다.
20대의 초입에 선 와타나베는 여성의 신체가 내뿜는 아름다움에 끌리기도 하면서 본능대로 움직이며 욕망을 충족하는 생활과는 거리를 두려 애쓰는 편이었다. 그는 군중 심리에 휩쓸려 술자리에서 만난 여자와 잠을 잘 때도 있었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애썼다. 와타나베의 도쿄 생활에 변화를 일으킨 미도리는 나오코와는 달리 생기발랄한 20대로 역동적이다. 둘은 같이 듣는 수업으로 자연스레 어울리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며 설익은 스무 살을 살아간다. 말하기보다는 쓰기를 좋아하는 와타나베는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며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문장으로 공유한다. 자신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편지에 썼고, 나오코의 편지 답신을 기다리며 평범하지 않은 세계를 접하며 사람 사는 어느 곳이든 개인의 역사를 새롭게 써간 사실을 확인하였다.
개학하여 학교로 돌아온 와타나베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나오코를 향한 마음은 커갔다. 그는 들어가서 요양하는 것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이 쉽지 않은 공간에 떨어져 있는 그녀에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였다. 학교에서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가끔은 야한 영화를 함께 보던 미도리가 학교 수업에 빠지는 날이 잦아졌다. 연유를 몰라 답답해하던 찰나 뇌종양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한 사정을 알고, 간병하는 그녀를 잠깐 쉬게 하려고 와타나베는 간병인을 자처하였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의 아버지는 점점 죽음으로 향하더니 종국에는 한 줌의 재로 화하였다.
아버지를 여읜 자매는 가족이 함께 살던 공간을 정리하고 자매가 함께 살 거처를 마련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미도리는 조금씩 평정을 찾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축적될수록 와타나베가 그녀의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으나 그는 여전히 나오코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사랑의 화살은 과녁을 빗나가 나오코의 병세를 악화시켜 전문의의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절망적인 현실에 위축된 그는 방황하며 미도리에게 심경을 토로하였다. 한편, 와타나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미도리는 외모에 변화를 주었지만 그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에게 실망하여 소통을 단절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저녁 나오코가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와타나베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길 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낸 한 달 여행은 와타나베의 마음을 잡아주지 못하였고, 나오코의 죽음에서 촉발된 충격을 덜어 주지도 못했다. 길 위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살던 집과 학교로 돌아왔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좋아하던 남자친구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허무의식은 더했을 테고, 어린 시절 영민한 언니의 자살을 목도한 나오코 곁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듯하다. 죽음과 동행하는 삶이 현세적 시간이라면 생을 마감하는 날이 살아가는 날과 함께하게 될 터이다. 절박함으로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는 노력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피력하며 성취를 보인 나와사키는 반듯하면서도 모범적인 하쓰미와 교제를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며 여러 여자를 전전한다. 몸을 헤프게 쓰는 나와사키인 줄 알면서도 그의 곁을 쉽게 떠나지 않던 하쓰미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지만 결혼 생활을 잇지 않고 목숨을 끊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는 와타나베는 만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동성애자인 영특한 소녀와의 만남에서 금단의 영역이 새롭게 눈을 뜨고 성적 에로티시즘을 맛본 레이코의 고백은 생경하면서도 여러 유형의 성적 사랑을 보여준다. 기괴한 장소에서의 성적 유희, 금기시하던 사랑의 일면을 여러 차례 보이며 삶과 죽음의 길 위에서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발아할 환경이 조성됨을 확인한다. 한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던 사랑이 돌고 돌아 마침내 함께하게 되는 교점에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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