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스카이폴>에는 인상 깊은 하나의 장면이 등장한다.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제임스 본드가 한 점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 쓸쓸한 뒷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다.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은퇴의 기로에 선 스파이는 그림 속 범선을 보며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것일까?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로서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처절하고 애잔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놀라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스타가 그 사람을 발견한 그날 밤. 우리 집에는 그림이 있었어. '테메레르'라고 아나? 그 사람은 그 아래 앉아 고개가 뒤로 꺾여 있었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그 하늘. 마치 그 일부가 된 것 같았지." (p. 154)
크리스 휘타커 작가의 <나의 작은 무법자>에서 나는 <전함 테메레르>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장면을 만났다. <나의 작은 무법자>는 15살 소년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한 아이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결코 돌이킬 수 없고, 없던 일은 더더욱 될 수 없는 이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기치 않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많은 이들의 삶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에 묶인 채 힘겨운 현재를 살아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명화 <전함 테메레르>는 이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이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던 사람을 잃게되었지만 이들은 결코 나와 빛나는 순간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을 내 삶 속에서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다. 아직도 그 미소가, 목소리가, 또 추억이 눈에 선하고,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차라리 그림의 일부가 되어 과거 속에 머무르는 걸 택한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는 말처럼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받은 상처의 깊이와 영향 받은 정도는 제각각 다르고, 또한 과거에 머무르면서 상실과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한 사람은 술과 약에 의지해 힘겨운 현실을 지탱해나가려 하기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경찰 서장이 되어 마을의 정의를 지키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헌신하기도 한다. 또 아직은 세상을 알지 못하는 나이의 소녀가 자신 보다 어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무법자를 자처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타인의 삶을 지지하기 위해서 희생하기도 한다. 과거를 극복하면서 현재의 삶을 재건하고 미래를 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청사진 (Blue Print)’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특정 시점의 순간을 박제하는 사진 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스크랩하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정 시간에 걸쳐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걸쳐 변화하는 대상의 입체적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대상의 모습을 무엇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반면 그림은 일정 시간 동안의 대상의 변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진이 아닌 그림을 지향하면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실의 행복과 미래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 속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세월의 궤적은 사진 보다 불분명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의 농축성을 기반으로 안정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무법자>의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처한 입장과 현실 속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실수에 대한 책임, 용서, 구원, 미래를 향해 뻗는 손.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전히 남아 있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불완전함과 취약성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가 아닐까? 신뢰와 사랑, 자발적인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용기와 위로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일정 부분 해소해줄 수 있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뢰와 공감을 기반으로 진실된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의 중앙에는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기함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1838년 영국 해군은 테메레르호를 런던의 운수업자에게 팔아넘겼고 배를 산 운수업자는 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화가 터너는 우연히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를 보게 되었고,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 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과거의 아픔을 딪고 미래를 향해 걷기 위해서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사랑하는 이를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남은 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같이 그려나가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존재 그리고 그와 함께 쌓았던 과거는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