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마음 치유까지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있는 이지안 교수님의 저서입니다.
저자는 다년간 '예술의 전당'과 '마이아트 뮤지엄' 같은 큰 미술관과 국내 여러 공공도서관 그리고 분당 서울대병원 등 실전 현장에서 방문객과 환자들을 접해 온 분입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쌓아 온 이런 체험과 임상 결과를 기초로 해서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약 한 세기 전의 벨 에포크 시대(19세기 말 ~ 1차 대전 발발 전)에 활약했던 대표 화가와 의미 있는 작품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요.
우선 <열두 밤의 미술관>은 표지부터 시선을 끌어들입니다. 초록빛으로 가득 찬 '5월 밤'(May Night). 인상주의 미국화가 윌러드 메트칼프(Willard Leroy Metcalf)의 그림으로 책 제목과 궁합이 딱 맞는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 속의 여인을 따라 밤의 도서관으로 따라 들어가는 환상에 빠집니다.
이 책은 겉으로는 벨 에포크 시대의 대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듯하지만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려고 하는 메시지는 프롤로그에 나와 있듯 뚜렷합니다. 그림은 도구일 뿐 혼돈의 시대, 그림을 가만히 들여가 보며 각자의 마음을 자상하고 상냥하게 성찰해 보고 객관화하여 한 단계 더 나은 삶의 길로 들어가 보라는, 아니 더 나을 필요까지도 없고 그냥 자신에게 더 친절해 줬으면 하는 저자의 따스한 조언이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내 걸음걸이에 맞게.
여러 인터뷰에서 저자는 이름 있는 기업에서 고속 승진하며 일에 파묻혀 살던 직장인 시절,실적 압박에 따라 찾아온 번아웃으로 어느 날부터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마치 일곱 번째 밤에 소개하는 작가 툴루즈-로트레크처럼 자신이 아파 봤기 때문에 타인의 아픔에 더 공감할 수 있었듯이 저자 본인도 내 길이 어딘지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더욱 애정어린 시선으로 타인의 마음에 공명하는 글을 적어 내려갈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연유로 강연마다 많은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결과로 나타나는 거고요.
저자 자신의 마음도 집필하는 글에 은연중 스며들어 가는 걸까요? 문장과 문장마다 매끈하고 유려하게 이어지는 자연스러움도 좋고 그 안에서 따스함이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저자 특유의 문체도 좋습니다.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히 재촉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감 넘치는 글은 너무나 매력적이네요. 미술 심리 치료사답게 매일 하루의 끝마다 굵직한 문장으로 화두 식으로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담긴 이 책은 소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하루에 한 분 씩, 소개하고 있는 열두 작가 모두 절대 평탄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아닙니다. 하나둘씩 다들 뭔가 빠지고 결핍이 있었던 분들. 이 결핍을 천재들은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시킨다지요. 이 열두 명의 화가 모두 천재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없습니다. 인류사에서 위대한 작품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했던 한 개인사 이 둘이 극단적으로 대비되기에 더 우리들의 가슴을 '아리고' 심장을 뭉클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하지만 잔인하고 무자비한 현실 앞.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매 세기 매 시대 혼란스럽지 않은 때란 것이 있었냐 싶습니다. 허나 근래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무서운 확산 속도에 심지어 AI 창조주들이라고 하는 이들까지도 당황하게 만들고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신기술의 공포가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고 공포스럽기만 했을 기술 문명이 하나둘씩 출몰하기 시작했던 근세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벨 에포크' 시대와 현시점을 병치시키며 말하고자 했던 저자의 집필 목적이 수긍되는 바가 컸고 그 속에서 항상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기술이 아닌 '사람'을 우선하는 저자의 삶을 대하는 자세는 더 의미 깊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즘 더 책이 안 팔린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출간되는 책의 양은 엄청나서 국내에서만도 신간 서적은 매일 나오고 년으로 따지면 책을 업으로 삼는 서평가들도 파악 못 할 정도로 많은 책이 출간됩니다. 그만큼 개개인이 세상에 말하고 싶어 하는 바가 많다는 의미겠지요. 무수히 많은 신간 중 그 중 보석을 발견하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보석 하나 줍는 행운입니다. 운명 같은 건데 독자 여러분들은 이 멋진 책을 운명 삼아 그 행운을 잡는 기쁨을 누렸으면 합니다.
이 책 <열두 밤의 미술관>은 현재 마음이 많이 지치시고 삶의 의미에 회의가 드시는 분들 그리고 잠시 부지런히 가던 길을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면서 인생 항로를 다시 찾아보시고자 하는 독자분들께 적극 추천해 드려봅니다. 물론 편안하게 명화 감상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독자께도 멋진 선택이고요.
미술 심리 치료사 이지안 교수님께서 엄선한 명화들과 온기가 듬뿍 담긴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며 퇴근 후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을 보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를 소개하는 앞장마다 작가 자신 내지 평론가들의 인용문이 적혀 있습니다. 영어, 불어, 독어 원문과 한글 번역문이 병기되어 있는데 이게 제겐 아주 매력적입니다. 대부분 떠돌아다니는 멋있어 보이는 구절을 갖다 쓰기에 내용이 정확하지 않은 게 많은데, 정확한 출처를 중시하는 이지안 교수님의 학자다운 집필 자세가 드러나는 곳입니다.
"유난히 마음이 소란한 밤, 그림 한 점이 당신의 마음에 가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