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없다면 판단을 유보하도록 훈련받지 않는 한, 인간은 독선적인 예언자들에 의해 잘못된 길로 이끌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지도자는 무지한 광신자이거나 부정직한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은 어렵지만, 대부분의 미덕은 불확실하다. 모든 미덕을 배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훈련이 필요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배우는 데 최고의 훈련은 철학이다.
하지만 철학이 긍정적인 목적을 수행하려면 회의주의를 가르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교조주의자는 해롭지만 회의주의자는 쓸모 없기 때문이다. 교조주의와 회의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인 철학이다. 교조주의는 아는 것을 확신하고, 회의주의는 모르는 것을 확신한다. 철학이 해소해야 할 것은 지식이나 무지에 대한 확실성이다. 지식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한 개념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안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이와 비슷한 어떤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이 크든 작든 불확실하고 모호하다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교조적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최선의 가설을 유일한 신앙처럼 떠받들지 않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반적인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즉 동일한 해악이 반대 가설에서도 똑같이 확실하지 않는 한, 불확실한 가설은 확실한 악을 정당화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