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출생. 86년생 여자. 올해 마흔이 되었고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으며, 직장인 8년 차.
이 한 줄에 담은 나라는 사람에게서 차별이란 단어가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싶지만 <여자>, <마흔>, <딩크>라는 단어들이 주는 인식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벽이 되기도 한다.
가령, 마흔이 된 여자는 관리직으로 올라가야 할 나이와 더 이상 젊은 감각이 남아 있지 않을 나이에서 애매한 평가를 받는다.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때론 '왜 아직 아이가 없냐'는 친절한 조언으로, 때론 '애도 없는데 야근 좀 할 수 있지?'같은 당연한 요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나를 규정하는 단어들이 나의 능력이나 의지보다 먼저 평가받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보고 내가 경험하는 차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우리 세대의 여성들은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했던 시대에 태어나 자랐고, 어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유리천장의 존재를 실감하며 독박 육아의 부담을 감내하고 있으며, 그 차별은 일상 속 폭력과 다름없으니 나는 그 피해자로서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답게 나의 예상과 달리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책이다.
나는 피해자 아닌 가해자
"나는 차별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차별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단 점에서 독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는데,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가 가진 무의식적 편견과 사회 구조적 문제를 성찰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꽤 신선하다.
그동안 나는 '차별'이란 단어를 나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 책은 차별이 반드시 악의적인 소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조차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차별을 '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의 차별 논의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무심코 저질렀던 차별을 되돌아보게 된다. 예를 들면 장애인들이 지하철 집회를 열었을 때 가졌던 불편한 시선. 또는 복직한지 얼마 안 된 동료가 다시 육아휴직을 간다고 했을 때 느꼈던 씁쓸함. 같은 여성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억누르려 했던 기억. 나는 이 사회가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아 딩크를 고민한다고 하면서 정작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동료에게 불편한 감정을 품었다. 자연스럽게 느꼈던 이런 감정은 결국 차별의 씨앗을 품은 감정이었고, 내가 바로 선량한 차별주의자였음을 공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가는 말한다.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라고.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 속 차별 언어. 정말 나는 몰랐어
작가는 사례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가 어떻게 차별을 강화하는지 설명한다. 다른 건 몰라도 독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꼭 알았으면 하는데 그 이유는 언어가 사람의 사고를 구조적으로 배치하고 그 생각과 편견이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확실하고도 결속이 높은 체계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든 예를 보면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현은 '정상 가족'과의 구분을 전제하며, '결혼 이주 여성'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한창 많이 보였던 'MZ 세대'라는 표현도 한 세대를 획일적인 이미지로 묶으며, '꼰대'라는 단어는 연령에 따른 선입견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MZ 세대'는 종종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묘사되지만, 이는 젊은 세대를 단순화하고 고정된 성격을 부여하는 프레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꼰대'라는 단어도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권위적이고 변화에 둔감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세대 간의 단절을 부추긴다.
이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한 말속에서 차별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으며, 우선 이를 인식하는 것부터 변화의 출발이다.
나에겐 차별, 너에겐 평등
이 책을 청소년기에 읽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한 사고로 내용을 받아들이고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차별로 느껴졌던 일이 누군가에겐 공정한 시스템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커서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 내가 차별하는 입장에 서 있는 순간이 많더라도 역으로 차별받는 대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특히 저자가 지적한 능력주의적 시각에서의 차별은 나를 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입사 기준(예: 토익점수)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모순된 감정과 생각이 반복될수록 나는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선량한 차별의 경험은 나의 전 직장에서도 있었다. 내가 회사에 들어도고 1년 뒤 입사한 동료가 있었다. 업무 능력이 더 특출난 것도 아니었지만 팀장은 남자 직원에게 먼저 진급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그가 남자여서 군대를 다녀온 기간을 고려해야 하고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 '남자는 가장이니 더 많은 책임과 보상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불공정하게 들렸지만 그 당시 팀장은 이를 공정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성별에 따른 역할을 고정하고 여성의 기회를 제한하는 차별로 작용했고 이것이야말로 '차별이 공정으로 포장된' 사례이자 내가 겪은 현실이었다. 이처럼 차별과 공정은 쉽게 뒤섞이며, 우리는 때때로 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곤 한다.
차별은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 세상에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올까?'하는 의문이 든다. 과연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우리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옷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란 질문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처럼 들린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차별도 등장하고, 과거에 비해 법적·제도적 차별은 줄었지만 무의식적 편견과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차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변화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느냐'가 아니라 '차별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다. 차별을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어질수록 사회는 보다 평등하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세상은 자연스럽게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단 나부터 바뀌어야
내게 붙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타이틀을 똑바로 인지하고 이 이름표를 떼기 위해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첫 번째고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인식하기
작가가 강조하는 것처럼 **나는 차별하지 않아**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차별은 일부 악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리고 내가 쓰는 일상 속 차별적 언어를 점검해 보자.
- 여자가 너무 드세니까 저래
- 남자가 저렇게 소심해서 어디다가 쓰냐?
위와 같은 말들은 특정 성별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또한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사회적 변화들(장애인 이동권 시위, 여성 할당제, 육아휴직 등)의 문제들을 돌아보며 그 불편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행동하기
차별적 발언을 들었을 때 그냥 넘기지 않고 반응하는 것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이다. 그뿐만 아니라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나 다큐멘터리,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접한다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차별을 간접 체험하며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구조적 변화 위해 소리내기
아무리 개인이 발버둥 친다고 해도 결국 사회 구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영향이 축소된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제도적 차별 개선을 직접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내가 리더급에 있다면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편견이 개입되지 않은 평가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아마 이들의 과정은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빛을 발하는 일일 테다. 저자도 이를 알기에 당장의 변화를 말하기보다 다양한 판례와 용어를 통해 독자들이 차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있다.
물론 그 변화는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법.
이 책이 더더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