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태어났니?
사르트르는 자유의 철학자라 불려도 손색없는 사람입니다.
평생
보부아르랑 연인 관계를 맺으면서도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고 하지요.
그의
사진을 보면 어딘가 기이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의
눈이 사시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정면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는 시선!
그는
‘사시의
철학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철학자의 삶을 그의 철학에 그대로 환원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재밌습니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출생을 비평하며,
자신을
‘죽은
자의 아들’보다는
오히려 ‘기적의
아이’라
부르는 쪽이 더 알맞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지 15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
없는
유년 시절을 그는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나는
초자아를 갖고 있지 않다.”(존무,
1028~1029) 이런
유년 체험이 그를 자유롭게 만들었을까요?
그러나
그의 자유는 ‘저주받은
자유’(존무,
1029)였습니다.
그의
외갓집 생활은 그를 ‘외톨이’,
‘이방인’으로
만들었습니다(“아비
없는 아이로서의 나는 오만함과 비참함으로 가득했다.”(존무,
1033)).
이런 체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해명하기 힘들겠지요.
다만,
그는
결혼하지 않고 자식을 두지 않았답니다.
양녀만
들였다고 해요.
추측이지만,
그
스스로가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지요.
‘아버지
없는 사회’를
건설하려 했는지도.
왜
사니?
소설 『구토』에서
로캉탱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낍니다.
그동안
매달려 왔던 롤르봉 후작의 전기를 쓰는 일이 귀찮아졌기 때문이지요.
그는
심각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실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나는 생각할까?
나는
이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왜냐하면...흥!”(구토,
149)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봐도 자유는 늘 불안을 동반합니다.
뭔가
하던 일을 딱 멈출 때,
어딘가
속해 있던 집단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불안합니다.
자유와
불안은 짝패인 것이지요.
이런
자유를 ‘텅
빈 자유’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유는
존재를 갖지 않았다.
자유는
존재에서 소외되어 있었다.”(존무,
1030)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다시
할 일을 찾거나 다시 어딘가로 속하려 합니다.
존재와
자유를 일치시키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지요.
이
연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
연기는 또 다른 말장난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연기는
자유를 끝없이 연기시킨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mauvaise
foi’인
것이지요.
“그의
자유는 연기를 위한 자유이며,
그의
연기도 그에게 존재를 부여하지 못했다.”(존무,
1034)
방황하며 열심히 일기를 쓰던 로캉탱은 드디어 결심합니다.
“나는
노력해 볼 수 없을까...
(중략)
... 그것은
책이어야 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니 말이다.
(...) 예컨대
어떤 이야기,
일어날
수 없는 어떤 모험적 순간 같은 것.
그것은
강철처럼 아름답고 단단해야 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나는
떠난다.
몽롱하다.
결정할
용기가 없다.
(...) 한
권의 책.
한
권의 소설이어야 한다.
그
소설을 읽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걸
쓴 사람은 앙투안 로캉탱이야.
카페에서
죽치던 머리칼이 붉은 놈이었지”라고.
(...) 그리고
그것은 내가 존재하는 것도,
또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완성되고,
그것이
내 뒤에 있게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 아마도
어느 날,
이렇게
등을 오그리고 기차 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
이
우울한 시간을 선명하게 떠올리면서 어쩌면 가슴이 더욱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그날,
그
시간이야”
하고
말할 때가 오겠지.
그리고
나는 과거의 나를,
오직
과거 속의 나만을 인정하게 되겠지.”(구토,
251~252)
우리는 우리의 어떤 모습을 인정하게 될까요...
왜
죽지도 않고 또 왔니?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크게 유행했던 실존주의의 사조는,
1960년을
전후해 나타난 구조주의의 위세에 밀려 점점 세인들에게 잊혀집니다.
실존주의의
실존이 위협받게 된 것이지요.
변광배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이 세계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구조주의자들은 소쉬르의 언어학과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의 영향으로 이 세계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그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관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면,
사르트르는
이렇게 해서 인간의 위대성을 믿으면서 인간에 대해 거대담론을 펼치는 20세기의
‘마지막
철학자’였던
것이다.”(변광,
98)
지난 세기의 ‘마지막
철학자’라는
표현이 서글프네요.
그러나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다루고 있는 타자의 문제는 라캉,
레비나스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들뢰즈는
사르트르의 타자론이 그 이후에 나온 타자론을 그 아류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대요.
그렇다면
우리는 라캉을,
레비나스를,
그리고
그 뒤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낳은’
아버지를
잊어야 할까요?
우리의
공부는 ‘호로자식들’을
생산하는 공부여도 좋을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사르트르의 ‘아버지
없는 사회 건설’은
실패한 것 같군요.
자,
이제는
하우투유즈사르트르를 고민합시다.
참고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변광배
옮김,
『
How
to read 사르트르』,
웅진지식하우스,
2008.
사르트르,
이희영
옮김,
『구토/말』,
동서문화사,
2011(2판).
사르트르,
정소성
옮김,
『존재와
무』,
동서문화사,
2009(2판).
변광배,
『존재와
무 -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살림,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