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에 읽은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해냄, 개정판 2005.)는 이제 정확한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받았던 충격은 여전히 선명하다. 도시 사람 전체가 하루 아침에 눈이 멀어버린다는 설정은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이 소설 전에는 미처 상상도 못했지만) 끔찍한 것이었다. 그 설정만으로도 소설 속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버렸으니까. 그런 상황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리 없어서 내심 안도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국가 전체가 장님이었음이 밝혀졌다. 마치 신탁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날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우리들은 자신의 눈을 뽑기라도 했단 말인가? 오이디푸스처럼? 우리는 그럴 용기도 없는 어른들이었다. 차라리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을 택한 비겁한 어른들이었다.
이 사건 전에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비겁함. 여기서 사건이라는 표현은 특히 중요하다. 사건은 사고와 명백히 다르다. 신형철의 말을 들어보자.
"사고는 '사실'과 관계하는, '처리'와 '복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이 정말 사건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산출한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것이다."('책을 엮으며',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229쪽.)
세월호는 침몰했다. 그것은 사고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뇌 없는 정치인의 말처럼,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공명하는 것처럼, 교통사고 같은 일이 결코 아니다. 이런 시도 혹은 반응은 공적인 사건을 사적인 사고로 축소·왜곡하려는 저열한 물타기이다.
다시 한 번, 다시 또 한 번이라도 짚고 넘어가자.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56쪽.)
처음에는 함께 울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졌다. 이른바 '세월호 피로감' 때문에. 이 표현의 힘은 놀랍게도 강력해서 사람들에게 잘 먹혀들었다. 이제 좀 그만해라, 지겹지도 않냐,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냐, 민생민생민생... 유가족들이 당장 죽어가는데 자기부터 살고 보잔다.
과연 이들은 나쁜 사람일까? 천만에. 좋은 사람이다. 남의 일에도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 충분한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 다만, 그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좋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슬픈 일이 일어났는데 슬퍼하는 일을 누가 못하겠는가. 눈물은, 누구나 흘릴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은영의 말처럼,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진짜 과제. 자정의 그림자처럼 영원히 남은 숙제.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정부가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려고 할 때, 그런 말들은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죽이려 든다."(신형철, 230.)
슬픔에 대한 공부를 한다는 것, 그것은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눈물이 계속 눈앞을 가리게 할 것이 아니라, 눈물에 깨끗이 씻긴 눈으로 진실을 주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박민규, 65)
* 이 책은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실린 관련 글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다음은 신형철이 '책을 엮으며' 한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제 이 책은 세상으로 나아간다."(231)
이 책의 순항을 기원한다. 그리고 진실의 생환도.
** 가장 흡족한 글은 역시 박민규의 글이다. 그 특유의 행갈이가 사람 마음을 이렇게 갈아 놓을 줄이야.
*** 사건 발생 205일 만에 세월호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단다. 잘된 일이다, 일단은. 더디더라도 확실히 '해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