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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하는 자유의 몸짓, 그것이 진정한 새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그 자유와 미지에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고대부터 하늘을 날기 위한 여러 장치를 계발해 왔고, 지금은 하늘 저 멀리 우주에로 그 힘찬 도약을 계속하는 중이다. 그러나 중력에 의해 땅을 딛고 살아야 하는 근원적인 인간의 숙명은 인공적인 날개를 달아 우주를 비상해도 현실 세계에서 영원히 떠날 수는 없다.가난하고 마음이 황폐한 자는 인공적인 날개를 달 수도 없고, 꿈꿀 수도 없다. 현실 세계에서 메말라가는 영혼은 날개에 대한 꿈마저 접어버린지 오래다.

소설 <새>는 아주 어리지만 세상의 서칠고 속된 모습을 이미 알아버린 두 남매가 나온다. 두 아이는 세상의 거칠고 아무도 애정을 갖고 돌봐주지 않는 세상의 참모습에 황폐해져간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정과 따뜻하고 온전한 것에 굶주려 있는 아이들. 결국은 남동생은 죽고 아이는 세상에게서 버림받았듯이 세상을 버린다. 자신을 낳아준 근원적 존재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충격을 받고 버림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며 본능적으로 스스로 살아가기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깨친다.그들을 아버지가 필요로 했던 것은 단지 아버지가 꿈꾸는 온전한 가정을 꾸미기 위한 방편이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관심 속에 내면 속으로 함몰되어가는 아이들. 영악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길거리로 몰려나가야할 힘없고 부칠 곳 없는 아이들은 결국 죽음으로 몰린다. 마지막으로 동생마저 잃어버린 아이는 이 모든 사실을 처음부터 되돌이켜 생각하며, 모든 성장의 아픔과 삶의 난폭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 소설은 그저 충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영악한 아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느꼈지만 그 영악함이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끼는 연민과 비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새>다. 아이들의 이 무섭도록 차갑고 불공평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다만 죽은 후에 등 뒤로 찢어질듯한 날개가 생길 뿐이다. 두 아이는 행복을 꿈꾼다. 날개를 달고 이 어두운 현실 생활에서 도피하기를 원하지만 영원히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의 숙명적인 고난과 고통 속에서 부칠 곳 없는 아이들은 메말라간다.자신 안에 날개를 피울 만한 디딜 곳이 없는 아이들은 내면적인 성숙에 도달하기 전에 날개가 꺾이고 꿈꾸는 방법을 잃어버린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한 도약의 날개짓'은 꿈꾸는 자에게서나 가능하다. 꿈꿀 수도 없는 어두운 현실. 아이들의 죽어서야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새는 우리가 외면해 왔던 진실에 근접하고, 우리는 진실의 어둡고, 사악한 면모에 놀라게 된다. 심리적이고, 그로테스크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이 소설은 버림받은 자, 꿈꿀 수 없는 자, 약한 자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새는 평범하고, 무난한 현실에 안주해서 세상이 모두 꿈에 대한 욕망으로 부풀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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