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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누군가를 매혹시키기 위한 것이다. 나의 냄새인 것처럼, 그 향처럼 내 자신도 향기로운 냥 말하는 일종의 가면인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향수>는 이런 가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생 이야기다.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냄새에 대한 집착이 그르누이의 향수 인생의 시발점이 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냄새를 가지지 못하고 대신 누구보다도 예민한 후각을 가진 주인공은 평생동안 향수 개발에 매달린다.

보다 좋은 향수를 만들기 위해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등의 윤리를 벗어난 행동을 일삼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향수를 만들게 되자 그 향수를 몸에 뿌린 채 죽음을 맞는다. 향수에 도취된 사람들의 손에 먹혀진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인간 사회에 대한 냉정한 시선과 연민이다. 주인공에게 주어졌던 재능은 오히려 그르누이에게 있어서 악(惡)이었다. 최고의 향을 찾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에게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마침내 찾아낸 아름다운 향을 뿌린 채 교수형 집행 장소에 나타나자 그를 비난하던 많은 이들이 향에 취해 탐욕스러운 성행위와 윤리에 벗어난 행동을 보인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비웃으며 유유히 집행장을 빠져나온다.

인간 사회의 윤리는 향수의 가면 속에서 아주 쉽게 무너졌다. 주인공은 그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집착을 스스로 용서하고 모든 인간다움을 자신에게서 배제했다. 누구보다도 향을 원하였으나 가질 수 없는 한 인간의 재능은 너무나도 불공정했다. 처음부터 이미 인간다울 수 있는 모든 욕구들을 부정하고 탄생한 그의 재능은 그리하여 이미 악(惡)이었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결국 완전한 자신의 향을 가질 수는 없었다. 최고의 향을 만들었지만 그 향은 타인의 향기였다. 그는 결국 자신이 갖아 사랑하고 동시에 증오했던 파리에서 죽음을 맞는다. 모든 인간적인 삶을 거부했어도 그는 종래에는 인간이었고 그의 향수에 대한 집착도 인간이고자 했던 한 사람의 몸부림이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그를 자살 아닌 자살로 이끈다. 그가 자신이 개발한 가장 아름다운 그 향수를 뿌리자 향수에 도취된 사람들이 그를 먹어버렸다. 그는 그 순간에 웃음을 지었다. 그를 먹었던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웃음에 대한 연민과 애증의 웃음이었다.

애정과 증오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했다. 그르누이의 향수에 대한 갈망과 인간에 대한 증오는 가장 인간답고자 했던 한 인간의 욕망과 애정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향수라는 가면 속에서 어디선가 소외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 인간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힘썼던 모든 노력이, 오히려 내 자신위로 향수를 뒤집어 쓰고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길을 아니었는지 말이다.

<향수>라는 책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 애증의 향수를 마음껏 맡을 수 있는 장이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자신의 향수를 맡아보고, 아직 자신의 향기를 찾을 수 없다면 스스로에게 연민을 뿌리며 야유해도 좋을 것이다. 지독한 향수의 깊이를 알고 싶다면, 읽는 이 모두의 마음을 위해 정제된 향수의 원액, 소설 <향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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