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게 원래 목적이다. 올 게 왔다. 는 생각이 먼저 든다. EMI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중견 피아니스트 - 젊은 편이긴 하지만 데뷔한지가 십년이 훌쩍 넘고, 그라모폰 음반상을 수상한데다 EMI의 GAOC(Great Artist Of Century)라인업에도 음반을 올려놓고 있는 연주자라면 신예라는 소리를 붙이는 건 실례다 - 가 드디어 라흐 1, 2번을 낸다. 내가 가진 슈베르트 음반으로 미루어보면 차분하고 묵직한 느낌이 난다. 자기 감정에 취해서 음 줄이거나 늘이는 경우는 거진 없다시피하고. 참 안전하게 친다는 느낌이었는데 실제 실황 가 본
사람들은 다들 스고이를 외친다고 하더라. 그러고보니 그리그/슈만 피아노 협주곡 엘범은 꽤나 멋졌지. 아마도 내가 미켈란젤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최고로 쳤을지도 모르고. 한때 왜 이 엘범이 그라모폰 협주곡 부분을 받았나 반신반의했던 적이 있다. 뭐 그라모폰의 편향성을 조금 감안한다면 뭐. 훌륭한 음반이긴 하니까 나중에야 인정했었지.
이녀석이 얀스네스의 라흐 3번. 처음에 이양반의 연주가 리히테르, 리파티, 아르헤리치, 미켈란젤리, 카잘스와 같은 라인업에 선다는 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조금 어색해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 선입견은 연주를 듣기 전에는 수이 수정되지 않지 싶고, 지금 생각같아선 듣고 난 다음에도 수긍하지 않지 싶다. 이건 절반은 내 고집과 선입견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하필이면 여러 의미에서 기적같은 연주가 제각기 개성을 발휘하고 있는 라흐3번이라는 레파토리 때문이기도 하다.
좌우간. 저 라흐 1, 2번 협주곡집이 기대되는 또다른 이유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반주로 라흐 2번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숟한 명연 많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라흐의 피아노 협주곡을 베를린 필이나 빈필이 연주한 음반은 드물다. 기껏 지금 생각나는게 아르카디 볼로도스의 라흐 3번 정도다. 피협 2번 도입부의 울렁임과 멜랑콜리를, 어떻게 소화해냈을지 궁금해서라도 한 번 들어봐야겠다. 보아하니 저정도 음반이라면 명연주 명음반 진행자 정만섭씨 성향상 신보소개라고 한 번 틀어주시지 싶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신작. 고도브스키의 쇼팽 연습곡 앨범이다. 일설에 의하면 극악 난이도의 피아노곡이라는데, 이 체력 만빵 피아니스트는 작년인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이 곡 전곡을 그에 걸맞는 영상과 함께 한 자리에서 쳐냈다. 그래도 이 피아니스트의 무한체력에 감이 안 오신다면, 재작년에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하루에 한 자리에서, 꽤나 훌륭하게 쳐 냈다는 걸 상기해 보시길.
저 곡을 나는 마르끄-앙드레-아믈랭의 연주로 들어보았는데 쇼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매너도 혹할만큼 영롱하고 아름답다. 괜찮은 음반 있으면 하나 사야지. 하는데 그 강력한 후보 중 하나다. 피아니스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신뢰가 가고. 생각 좀 더 해봐야겠다. 이유는 쇼팽. 쇼팽. 쇼팽.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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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향상 이남자를 거부할 이유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음반은 한 장도 없다. 라디오에서 흘러가듯 들은 연습곡, 얼음 망치로 두들겨대는듯한 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도 꽤나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말이다. 다른 연주자들의 비창이 슬픔으로 타오른다면 그의 비창은 차갑게 굳어버린 가슴에 주먹질을 해대는듯한 느낌이 난다. 인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비창과 확연히 다른 냉철함이 꽤나 와 닿았었다.
이남자의 녹턴. 이라. 혹자는 테크닉뿐인 연주기계에 가깝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던데 테크닉 신봉자에 속하는 매너에게는 별로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테크닉이 곧 예술적 가치의 척도가 되는 경우도 적잖게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말이다. 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첨가된다면 더 좋겠지만 일단 기본중에 쌩기본을 극한까지 밀어부치는 극한기본의 미학(?)에 내가 열광하기 때문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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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하나는 끝내주게 만드는 DG. 작년에 아르헤리치/플레테뇨프의 프로코피에프 신데렐라 음반으로 날 감동시키더니 이번엔 이 초절정 미녀 바이올리니스트의 자태로 날 매혹시킨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집. 토마스 체헤트마이어의 연주로 가끔 즐겁게 듣고 있는 터라 별 욕심이 안 나긴 하지만 정말 표지만 보고 헉. 해서 살 만 하다.
침 질질 흘리기만 하는 이유인즉슨; 젠장. 이번달도 적자다 적자. 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