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얼마나 열정과 자유를 옹호하건, 나이 먹을수록 삶은 평탄할수록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나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저항해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주장하는 건 아닌지, 사람들은 신념이 있어 행동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행동이 먼저고 다른 건 전부 그럴듯하게 지어낸 변명이 아닐까하는 의심.
내 회한에 찬 백골을 이끌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는 대신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펼쳤다.
제목이 '거지소녀'다. 책의 크기는 살짝 크고, 무게도 들고 다니기에는 좀 무겁다. 하지만 사막보다야 싸게 먹힌다.
가난한 계층에서 태어나, 운 좋게 부유한 집안의 자제에게 사랑을 얻고 그와 결혼한 로즈. 하지만 그 뒤로 그녀의 인생은 불륜과 이혼, 가난한 예술 노동자의 생활로 이어진다. 로즈의 인생 곡선을 그린다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생겼을 것이다.
열 편의 단편은 각각 로즈 인생의 한 시점을 그려낸다. 아버지에게 건방지다고 얻어맞는 장면에서 시작해 고향 술집에 앉아 동창과 시시콜콜한 옛날 일을 떠드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 나는 읽으면서 중간중간 그만 멈출까하는 고민을 몇 번 했다. 먼로는 너무 잔인하다. 그녀는 비정한 현자같다. 소설이 추구해야 할 것이 (제임스 미치너의 말처럼) 우리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이라면 먼로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타고 남은 잿더미를 관찰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왜 그랬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내가 무슨 일을 한 걸까?
'거지 소녀'는 줄곧 과거시제가 쓰인다. 단지 시간대의 차이가 있을 뿐 로즈는 작품 내내 자기 인생을 회상한다. 단편은 로즈의 인생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그녀가 한 선택의 모음이기도 하다. 선택과 그 결과의 나열. 플로의 앞에서 건방지기로 한 선택은 장엄한 매질을 불러오고, 결혼은 이혼을, 반복되는 불륜은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만을 남기고 끝난다. 이미 모든 게 다 지나가고 난 뒤에 하는 회상에서 꿈과 환상은 그 빛을 잃는다.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건 철없음이고 꿈은 허영심의 발로다. 그리고 환상은, 환상이 할 일은 그게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차차 깨닫게 하는 것이다.
사실 시점을 조금만 달리 해보면 로즈는 대단한 여성이다. 시대가 강요하는 의무에 굴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 이루어낸 인물이다. 그녀는 젊은 여자들의 인터뷰 대상이 됨직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녀를 부러워할 것이다. 로즈는 가난하게도 살아보았고, 부유층의 화려한 삶을 누려도 보았고 윤리 기준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는 예술가의 칭위도 얻었다. 그녀는 분명 실패보다는 성공한 사람의 일원이다. 하지만 지난 날을 관조하는 그녀의 시선은 냉정하고 용서가 없다. 그녀는 자기 삶이 자랑할 만한 게 못 된다는 걸 안다.
‘그녀가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녀가 수치스럽게 여길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덜렁거리는 맨가슴이 아니라, 자신이 파악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실패였다.’ p 364.
나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했지만, 설명할 수는 없다. 자유를 선택할 때,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그 대가가 무엇인가? 잃는 건 완전한 가족과 고정적인 수입, 안락함과 평정 같은 것만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자부심은 반토막나고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로즈처럼 누구의 지지도 없이 자기 삶을 살기로 결정할 경우, 빈곤한 마을에서 자란 여자아이는 고향을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야 한다. 그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낄수록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다.
고향이 그녀에게 가르친 건 겸손하게 불평하지 말고 자기 주제를 잊지 말라는 교훈이다.
"네가 시를 잘 외울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선 안 돼.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p 352.
다른 예술가들과 로즈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그녀만이 가난한 계층 출신인 게 아니라 그녀만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 여전히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다시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가 줄 거라고.
물론 그건 환상이다. 삶은 누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고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려는 사람에게는 더 냉정하다.
자아를 찾아 문 밖을 나가는 사람에게 눈부신 빛, 인생에 맞선다는 결의같은 게 있을지 몰라도 그 역시 순간의 햇빛이 만들어낸 환영이다. 밤이 되고 나면 그 사람이라고 후회스런 감정이 없겠는가. 평범하게 산 사람들의 후회는 차고 넘치는 데 제멋대로 산 사람들의 진영은 꽤 조용하다.
왜 일까?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한 사람은(특히 여성은) 어쩐지 삶에 대해 불평한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 근면하고 순응한 사람들의 고단함에 감히 숟가락을 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염치없이 이기적으로 산다는 수치심 같은 게 속에 응어리지는 걸 막을 수 없다.
'거지소녀'가 여기에 주목해서 다행이다. 그녀는 자신이 꿈꾼 게 허영, 거짓, 기만처럼 느껴진다고 나는 부끄럽고 실패했다고 생각한다고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삶의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로즈의 세심함은 차갑지만 냉정하지 않다. 겨울밤 유리창에 달아오른 뺨을 갖다 대는 것 같은 위로가 있다. 이 책을 읽어 다행인 건 내가 환상을 품고 있던 삶이 그 빛을 잃은 것이고 애통한 것도 그 것이다. 나는 뜻하지 않게 너무 알아버린 것처럼 허탈하고 동시에 홀가분하다. 책이 내게 위로를 주기를 원했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성숙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건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삶의 면면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그래야 바보같은 선택을 피하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로즈의 이야기를 실패와 실망으로 점철된 우울한 넋두리로 읽는 독자들도 많은 듯하지만, 표면적으로 어떻게 보이든 아픈 경험을 통해 주류에서 벗어날 용기를 낸 로즈는 궁극적으로는 만족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탈출의 꿈만 꾸지 않고 직접 가봤으므로, 부딪치고 살아봤으므로, 궁금한 것은 끝까지 들여다봤으므로, 그 모든 수치와 비아냥을 견뎌냈으므로, 외롭고 보잘것없더라도 자기가 선택한 삶이므로.' p 382
옮긴이의 말을 읽고 어쩐지 나는 더 우울해졌다. 나는 이 이야기가 실패와 실망으로 점철된 우울한 넋두리라 좋다. 게다가 이게 왜 넋두리인가? 이건 아무런 유산 없이 자신을 만들어가고자 한 여성이 겪은 위대한 싸움의 회고록이다. 소설 밖의 세상에서 위대함이란 이렇게 별볼일 없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라는 단어로 이 책에 없는 온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망설여진다. 로즈는 자기 삶을 어떤 왜곡도 없이 진실하게 보고자 한다. 그녀의 삶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보잘 것 없지도 않다. 이런 애매한 중간에 선 사람들은 주류에 머무르건 벗어나 패배감은 피할 수 없나 보다. 하지만 어떤 삶이 너무 찬란하게 보일 때 그 빛은 꺼트려 줄 필요가 있다. 환한 빛은 시야를 흐리게 하고 환상을 만들어내니까. 그 환상이 얼마나 아름답건 소설은 예술이 아니라 진실에 종속한다.
세심히 책을 읽은 독자라면 사실 로즈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해서 애수가 없을까. 궁극적인 것보다도 사소한 것들이 나를 잡고 흔들 때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버틸 힘이 된다. 나는 고독, 독립, 열정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족, 이타심, 희생, 신의 같은 것보다 귀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모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로즈에게 그건 욕심이었지만.
삶이란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애인을 기다리며 터미널에 앉아 있어도 그는 오지 않는 것처럼, 감히 기대해서는 안 되는 법.
덕분에 나는 전혀 다른 환상을 갖게 되었다. 한 십 년쯤 뒤에 풍파에 지친 모습으로 우연히 들어선 술집에서 생각지도 않던 동창을 만나는 것. 내게도 학창시절 랠프 길레스피같은 녀석이 있었다. 세상의 법칙이 내게 호의를 베푼다면, 우리는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나 주고 받을 수 있겠지. 술 한 잔으로 나누는 위안과 우정! 이런 몽상에 빠져 있자니 갑자기 로즈가 부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