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simsoyeon 2021/02/1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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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 않는 하루
- 이화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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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 - 2021-02-08
: 404
몇년 전에 신형철 문학평론가님이 진행하던 문학동네 팟캐스트를 듣고 알게 되었던, 이화열 작가님의 신간이 나왔다. 그때 신형철님의 극찬에 에세이집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책도 사서 보고 작가에 대한 호감으로 검색 끝에 블로그를 찾아내어 이웃추가를 하고 새글이 올라올 때마다 챙겨 보곤 했다. 블로그의 글들은 좀 더 현실적이어서 가족들 이야기 특히 남편에 대한 애정 가득한 험담을 웃으며 보았다. 프랑스에 살고 계신다고 하는데도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담담하거나 과격한 의견 피력은 멋있어 보일 정도였다. 어느 날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글을 보고 걱정했는데 언제인가부터 다시 포스팅이 올라오길래 많이 아프신게 아닌 것 같아 안심했었다. 며칠전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다.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 너무 좋아서 책을 덮어버렸다. 금세 다 읽어버리기 아까워서였다.
- 피아노 건반 소리가 음악으로 바뀌게 되듯 인생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섬세한 시선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감수성은 일종의 악기 같아서 연주하는 법을 모르면 나무 토막과 다름없다.
각자 즐거움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부조리한 삶의 희생자일 뿐이다.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이라는 병의 백신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두려움에 대한 백신을 처방받았다. 무의미한 각각의 피아노 건반 소리가 어떤 일정한 리듬과 멜로디 속에서 음악으로 바뀌는 것처럼, 끝없이 흐르는 순간들을 엮어 의미있는 것으로 인식하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워나가라는 뜻이라는 것을 책을 다 읽고나니 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암이라는 병을 만나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저자의 일상과 생각들을 적은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특유의 절제된 감정과 과잉되지 않은 표현으로 그저 덤덤히 읽었는데 다 읽고 다시 훑어 보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얼마 전에 읽었던 '푸른 밤'이란 책이 떠울라서 였을까. 존 디디온이란 작가가 남편과 딸을 비슷한 시기에 잃고 쓴 에세이인데 역시나 절제된 문장이었음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난 뒤 한 순간도 그 상실감을 잊지 않고 있음이 느껴져서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느닷없이 암이라는 병이 자신을 찾아와 죽음이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살면서 이런 순간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미치도록 슬플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들에게서조차 멀리 떨어져 있다. 병실 넓은 창으로 보이는 하늘, 어쩌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병, 그리고 오롯이 나뿐이다. 완벽한 개별자로서의 나, 그것을 또렷하게 대면한다.
-내가 없어도 아이들이 잘 살 수 있을까? 이상하리만치 걱정되지 않는다.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해도 아이들은 슬픔을 극복하고 잘살 것 같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주었다는 걸 느낀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단단한 믿음이다.
나역시 나의 죽음을 상상할 때 슬픈 감정이 밀려오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슬퍼하는것이 떠올라서였다. 죽음 앞에 선 개별자로서의 나도 순순히 그것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아이가 성인이 될때까지는 내가 무사하길 바란다. 살아있을 때 마음껏 후회없을 정도로 사랑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 '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렸을 적 골목에서 뛰어놀다가 해 떨어지고 허기질 때 밥 짓는 냄새와 함께 돌아가는 그 집이 떠오른다. 모든 여행이 시작되고 되돌아오는 장소. 죽음도 그렇다면 좋겠다. 골목에 나가 모든 것을 잊고 뛰어놀다가 기분 좋게 나른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어쩌면 정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은 죽음이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인지도 모르겠다.죽음이 끝이 아니라 본래 시작된 곳이고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인지도.
항암치료를 끝내고 친구가 사는 베를린에서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던 작가는 강의 다리 앞에서 남자가 연주하는 기타의 선율을 듣는다. 그 때 감동이 순식간에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번지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이런 우연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하고, 이런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라고 작가는 묻는다.
슬픔을 자극하는 것도 감정 과잉도 없이, 작은 성찰들을 기록한 글들은 그런 이유로 더 감동적이다. 글을 읽는 동안 작가님 표현대로 마음의 작은 흔들림들이 자주 있었다.
-견뎌야 하는 시간, 여백의 시간, 고통으로부터 훔친 시간에 케이크를 굽거나 공사를 하면 그 시간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 된다.
작가는 지난 일 년 동안, 케이크를 태어나서 가장 많이 구웠다고 했다. 아무것도 못할 것같은 견딤의 시간에 몸을 움직여 달콤한 것을 만들어 타인에게 선물했다. 관조적인 태도의 글이지만 내용은 한없는 사랑으로 흘러 넘쳤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들에 대한 사랑, 이웃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책에 대한 사랑까지. 결국 삶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가고 그 순간을 만끽했을 때에, 자신만의 즐거움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 끊임없이 연주할 때에 우리는 각자 순순히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겠지.
작가님의 건강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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