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 한번 읽고,
정독해서 한번 읽고,
맘에 드는 몇 편 베껴쓰면서 한번 읽었다.
갈수록 좋았다.
<안나푸르나> <자귀> <거미의 우물> <봄밤> <꽃잎 지는 소리>
<늙은 옹기속 아버지><간이역>등을 베껴썼는데 그만큼 내 정서를 사로잡았다는 뜻일 게다.
내용과 형식이 잘 버무려졌고 대상을 보는 시선, 깊이, 상징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안나푸르나>는 <서시>라는 제목을 달아도 좋았을 것 같았다.
시인이 지향하는, 이 시집이 아우르는 행보와 주제가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시집을 읽으면 건질 게 몇 편 없는데
이 시집은 버릴 게 몇 편 없을 정도로
시어를 고르고 다듬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약력에 의하면 <좌판>이라는 시가 신춘문예 당선작인데
시집 속에서는 그닥 돋보이지 않았다.
신춘문예를 뛰어넘는 작품이 많다는 뜻으로
그동안 끊임없이 시를 벼려왔다는 증거이기도 할텐데
왜 이리도 첫 시집이 늦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