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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서고
  • 나의 통역사
  • 리 랑그바드
  • 16,200원 (10%900)
  • 2026-06-16
  • : 1,790

'나'는 한국에서 덴마크로 해외 입양되었고, 12년 전인 이십 대 후반에 한국 가족을 처음 만나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 원가족과의 소통은 통역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렇다보니  만남의 시간은 짧고, 대화는 단조롭다. 아주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나'와 한국의 가족들. 


'나'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그 생각은 통역사도 알지 못한다. 연인이기도 한 통역사조차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짐작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어 장벽, 문화적 괴리, 가부장적인 분위기, 차별과 혐오, 정체성의 혼란을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의 한국 자매들은 그들의 남편과 자식 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통역사와 부모님들이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는데 대화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저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다. 한국 아버지가 임종을 맞았을 때 유가족 명단에 '나'의 이름은 없다. '나'는 소외감을 느끼고, 슬프다. 



읽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고 해서 서로의 언어를 다 이해하고 공감하며 배려하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산 혈육이라고해서 가족 구성원 중 성소수자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가정은 많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물론 혈육으로 엮인 원가족에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타국으로 보내져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성장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감히 비할 수는 없다. 다만 핵가족화를 넘어 딩크족이나 2인 및 1인 가구가 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나'가 느끼는 소외감이 비단 한국 가족에게서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고독에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음을 말하고 싶었다.    


본문 중에 기억에 남는 '나'의 말이 있다. 그는 입양인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부모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모 역시 자식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야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족 중심 사회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정서적으로, 관습적으로 가능하기는 할까싶지만, 한편으로는 일정 부분에서 필요하다는 데에 같은 생각이다.  


통역사가 '나'에게 물었다. 가족이라는 구조가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왜 한국 가족과 연락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이 쓴 책의 내용 때문 자매들에게 내쳐질까봐 두려워하는 거냐고. 이 모순된 양가적 감정을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에라야 우리는 타인의 소외감과 슬픔을 이해할 준비가 된 것은 아닌지. 



대화 형식으로 이뤄지고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에 문장은 간결하다. 그러나 그 어떤 장문의 서사보다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이 깊이 전해졌다. 사이사이 통역사를 통하지 않는 '나'의 혼자만의 생각들 앞에서 페이지가 오래 머물렀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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