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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쾡이님의 서재

사랑에는 반드시 끝이 찾아온다. 끝난다는 걸 알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그것은 삶도 똑같을지 모른다. 반드시 끝이 찾아온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사랑이 그렇듯이 끝이 있기에 삶이 더더욱 찬란해 보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죽을 때 떠오르는 것은 마땅히 있었어야할 미래에 대한 후회다. 미래인데 후회라는 말은 이상할지 모르지만, 내가 살아 있다면 하는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없는것들투성이다. 이상야릇한 일이다. 그 모든 것이 지금 내가 없애려는 영화처럼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것’투성이였다.
그렇다. 해파리조차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도, 음악에도, 커피에도, 그 어떤 것에도 존재하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것이 무수히 모여서 사람 형태를 본떠 만들어진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봐온 수많은 영화와 그 영화와 연결된 추억들이 단적으로 표현된 모습이 바로 나 자체인 셈이다.
인간은 속박을 대가로 규칙이라는 안도감을 얻은 것이다.
시계가 사라진 세상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내 안에서 여러 가지 인간의 규칙이 와해되어 갔다. 시간과 마찬 가지로 색이나 온도라는 척도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모두 다 인간의 체감에 인간이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눈앞의 것에 쫓기면 쫓길수록 정말로 소중한 것을 할 시간은 사라져간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 소중한 시간이 사라져가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에서 잠깐만 멈춰서 보면, 어떤 전화가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한지 금방 알았을 텐데.
그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본질적이지 않은 무수한 일에만 쫓겨온 결과, 인생 마지막 시점에 ‘이건 아니었는데’라며 한탄하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고, 미래에서 현재로 흘러온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분명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무한한 미래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미래가 유한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미래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진즉에 확정된 미래를 내가 걸어간다. 그런 감각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생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선고받은 데다 시간이 없는 세상에 내던져진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난생처음 내 의지로 미래를 바라보려 하는 것이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의 세상에는 ‘고독’도 존재하지 않겠지. 다만,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와 있을 때’가 존재할 뿐이다. 고독은 인간만의 소유물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고독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어떤 감정’이 있다.
그 사랑이라는, 인간 특유의 귀찮고 거추장스럽고 그러면서도 인간을 절대적으로 지탱해주는 그것은, 시간과 아주 비슷하다. 시간, 색, 온도, 고독, 사랑. 인간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들. 인간을 규제하면서도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들.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과 고양이는 벌써 일만 년이나 함께 살아왔어. 그래서 고양이와 내내 같이 있다 보면, 인간이 고양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의 곁에 있어줄 뿐이라는 걸 차츰 깨닫게 된단다."
가족이니까. 거기에 있는 게 마땅하고, 당연히 언제까지고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의 정의만 계속 고집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가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은 ‘행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단지 피로 이어져 있을 뿐, 두 사람의 개인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게 응석을 부리고 또 부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나답게 살았어야 했을 인생을 살아가지 못한 인생.
이제껏 한 번도 나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인생.
무수한 실패와 후회, 이루지 못한 꿈, 만나고 싶었던 사람, 먹고 싶었던 음식이나 가고 싶었던 장소. 나는 어쨌든 그런 것들을 수없이 끌어안고 죽어간다. 그래도 좋다. 나는 지금의 나로 좋다고 느낀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가 아니라 여기에 있길 잘했다고 지금은 느낀다.
인간은 보물을 잡동사니로 간단히 바꾸는 능력이 있다.
제아무리 소중한 선물도 사랑스러운 편지도 아름다운 추억도 결국은 잡동사니가 되어 잊히고 만다. 나 또한 그 보물을 그 추억과 함께 봉인했던 것이다.
내가 존재한 세상과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 거기에 있을 미세한 차이.
거기에서 생겨난 작디작은 ‘차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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