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무지개에서 보랏빛이 어디서 끝나고 주홍빛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 경계를 분명하게 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지개의 일곱 빛깔 차이를 분명하게 안다고 해도, 어느 빛깔이 정학히 어디에서 그다음 빛깔로 섞여 들어가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온전한 정신과 온전치 못한 정신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311
오래전부터 읽고 싶은 책으로 찜해 두었던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드디어 읽었다.
인쇄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였으니 필경사들의 역할이 컸을 터인만큼 그들이 들려주는 필경사란 직업과 하루,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꽤 기대되었기 때문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문서를 필사하는 필경사들의 면면을 보니 평범한 이들은 아니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인물이 바틀비라했다.

사실 나의 생각과 달리 전개되는 이야기에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러다가 이내 바틀비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주인공이 될 수 있겠는가라며 수긍하며 읽었다.
그럼에도 내심 그에게 어떤 사정이나 고민이 있었는지, 그가 살아온 배경 등 약간의 힌트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리고 묘하게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

오직 자신만의 좁은 공간 속에 갇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하는 바틀비,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젊고 건강한 멋쟁이 배꾼이었던 빌리 버드, 10년이란 긴 시간을 들인 노력이 실패로 끝난게 다행이라며 인정하며 웃는 삼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의외로 여러 편의 이야기가 함께 실린 중단편집으로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행복한 실패', '빌리 버드'에는 작가 허먼 멜빌의 경험과 시선으로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비판하며 그 당시의 삶, 가치관,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벌써 시사하는 비가 크지 않은가.

지금은 영상과 자막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시대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해도 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이렇듯 작가가 묘사하는 배경, 장면,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내 나름대로 그려보며 읽게 된다. 저마다 그려보는 장면들로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