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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한다윗님의 서재
  • 영성 없는 진보
  • 김상봉
  • 10,800원 (10%600)
  • 2024-02-26
  • : 5,719

본서는 김상봉 교수께서, 현 민주주의 위기를, 진보 세력의 위기로 성찰한 후, 영성 없는 진보였기에 민주주의 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먼저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보 세력에 국한해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민주주의 역사는 시민혁명의 역사요, 이를 뒷받침한 진보 세력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즉 애초에 보수 세력은 민주주의의 진전 가운데 아무 것도 헌신한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위기가 닥쳐왔다는 것은 결국 진보 세력 자체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말과 다름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함석헌은 3.1운동에 참여해 총칼로 무장한 일본 군경 앞에서 비무장으로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용기의 발로만이 아니라, 적에게도 이성과 양심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다. 생사를 건 투쟁 가운데서도 보존되는 이런 믿음이야말로 영성의 발로이다. (…) 안중근이나 함석헌이 다른 민족에 대해서도 굳건히 견지했던 내가 전체와 하나이며, 적도 나의 일부라는 믿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P.105)”이어서 진보 세력의 위기는 ‘영성의 부재’라고 진단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성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인용한 문장처럼 <전체>와 <나>가 하나라는 믿음입니다. 일반적인 <나>는 곁에 있는 <너>의 고통조차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예컨대 전태일 같은 사람은) <세계>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깁니다. 세계라는 <전체>가 곧 <나>와 분리되지 않는 하나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는,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긴 사람들의 분투가 있었습니다. 전태일도, 이한열도, 그리고 당시 민주주의 투사들은 대한민국 사회 민중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을 일궈냈습니다. 그렇다면 달리 물어볼 수 있겠습니다. 왜 오늘날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때처럼,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영성’의 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타자를 향한 애틋한 사랑의 자리는 정치권력 투쟁을 위한 암투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2022년에 개봉된 영화 <킹메이커>에 등장하는, 고 이선균 배우가 맡았던 서창대 역할을 숙고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민들을 위해 일어났지만, 시민들을 위해서는 선거에 이겨야만 하고, 따라서 이를 위해서 결국 시민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그의 면모는, 오늘날 ‘영성’이 사라진 진보 세력의 민낯입니다.분량은 짧지만 충분히 곱씹을만한 문장들과 논리 전개가 넘쳐납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민주주의’와 ‘공화국’ 사이의 간극에 대해 지적한 세 번째 챕터의 내용입니다.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담은 체제가 민주주의입니다. 각자 한 표씩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국가가 모든 국민의 이익,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공화국입니다. 민주주의는 “By the people”이라면, 공화국은 “For the people”겠지요. 현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주의가 공화국으로 이어지지 못해 오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정부에 시끌벅적했던 부동산 담론, 코로나 자영업 담론, 그리고 오늘날 간협 혹은 의협과의 팽팽한 대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각자 한 표씩 행사하는데, 막상 이익은 누군가가 더 누리고 있는 현실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초래했다고 볼 수 있지요.

현 정국에 관심이 한 풀 꺾여버린 이들에게 본서를 권합니다. 또한 정치현실 속에서 분노에만 사로잡히는 분들께도 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언어가, 구체적인 역사 현실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변주되는지를 마주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새삼 생각도 많아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근래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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