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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가의 갓생습관
그냥
다독가  2013/11/12 04:13
  • 그냥
  • 박칼린
  • 12,600원 (10%700)
  • 2010-11-10
  • : 4,348

'마녀'. 그녀의 별명은 마녀란다.

음악 전문 감독, 무대 연출, 교수 등 활동폭이 넓어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지만 마녀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리는 까닭은 2011년 KBS 예능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에서 보여준 강한 인상 때문일 것이다.

 

날카로운 이목구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 날카로운 독설들이 요즘에야 그런 캐릭터가 낯익어서 그렇지 10여년만 더 전에 봤더라도 잠결에 가위를 눌릴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책을 냈다. 그것도 에세이로.

표지에 자기 얼굴 하나 쾅 박은 '청춘, 언제까지 그렇게 살텐가?'스러운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에세이라고?

내 편견과는 달리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마녀와는 거리가 먼, 수더분하고 또 덜렁대는 친근한 그녀가 그려졌다.

 

시간과 목적지 없이 한국의 국도를 운전하면서 길이 부르는대로 가는 '구름투어'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물들에 관한 이야기...

읽을 수록 매력이 느껴졌다.

 

외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산 것이 아니라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한국계 아버지를 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처음부터 성격이 꼬장꼬장한 편이 아니라 오히려 내성적인 편이었다.

내성적인 그녀에게 첼로는 참 잘 맞는 악기였을 것이고, 어느덧 학교 오케스트라에 합류하게 되다가 갑자기 선생님이 연극부로 보내 연극을 하게 된다.

정식 연극반 학생은 아니었고 밑에 피트에서 연주하는 학생이었으나 선생님은 대본을 수정하면서까지 칼린을 무대에 세우고 싶어하였다.

눈에 띄지 않고 싶어하던 내성적인 소녀가 무려 1인 5역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운명에 눈뜨게 된다.

고등학교땐 대사가 긴 지루한 작품을 하였는데, 그러다보니 선배들이 가사를 까먹는 일이 많아 네 소절짜리 짧은 노래를 넣은 것이 계기가 되어 뮤지컬에 발을 들이게 된다.

참 운명이란 얄궃다.

내가 가고 싶던 길이 아니었음에도 어느덧 나를 인도하고 있으니...항상 그때그때 최선을 다 해야겠다.

 

(본문 83p)

온통 대사 뿐인 그 지루한 작품을 히케 된 것도 선배가 대사를 까먹고 무대 밖으로 튀어나간 것도, 무대를 수습하지 못해 미친 척하던 것도, 다시는 그게 싫어 네 소절짜리 노래를 만들어 부른 것도, 모두 그리 되려고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 운명에게 그냥이란 없다. 곧 죽는다하여도 그냥으로는 살지 말지어다.

 

그녀의 독설이나 꼼꼼함은 어떻게 보면 프로페셔널함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치밀하거나 유난맞은 성격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 공연계다.

차츰 그녀의 무기(?)가 궁금해졌다.

쉬는 날이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오페라를 감상하며, 작품을 분석하면서 영감을 얻을 것 같았으나, 그녀의 대답은 엉뚱하게도 설거지였다.

아무 생각없이 단순 노동을 할 때 머리에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다고 한다.

 

(본문 53p)

특히 설거지를 할 때 상상력이 분출되어 이 세상 저 세상을 넘나든다.

설거지라는 그 상황이 나와 맞는가보다.

따듯한 물에 손을 넣었을 때의 아늑한 느낌, 뭔가를 청결히 한다는 마음의 안도, 그리고 창문 밖 먼발치에 시선을 던지고 멍해지는 것 때문인 것 같은데, 그나마 이때에 재미나고 창의적인 생각들이 많이 스쳐갔다고 할 수 있겠다.

그순간 가끔 특이한 생각의 요소나 반짝하는 아이디어들을 잡아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긴 나도 생각해보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군대에서 멍하니 근무설 때, 동네를 산책할 때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던 것 같다.

 

(본문 52p)

"영감이란 그 어떤 형상의 ‘끝과 완성'을 얻거나 본다기보다는 다른 것에 의한 순간적인 자극이 또 다른 그 무엇의 일부를 비추거나 그 무엇의 완성으로 인도해주는 시발점이다. 불을 지피는 부싯돌에 비유하는 게 맞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 하나.

 

(본문 183p)

공연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끔씩 강의를 나가게 될 때, 꼭 빼먹지 않고 당부하는 말이 하나 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공연을 꼭 보러 가라는 것이 그것인데 이것 역시 하나의 의식으로 설명이 된다.

물론 휴일에 집에서 편하게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도 된다.

하지만 공연 관람은 그것보다는 한 단계 더 복잡하고 준비성이 필요한 의식이다.

날짜를 정하고, 같이 볼 사람을 정하고,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해 함께 볼 작품을 고르고, 공연 전 저녁식사의 메뉴를 정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공연 관람' 이라는 의식의 의미이자 내용이다.

이를 통해 우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하는 법을 배울수 있고, 여러 가지 예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나는 의례, 의식, 절차 이런 것들을 되게 싫어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의 기쁨을 위해 뭔가를 꾸준히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건 그렇게 스트레스 받는 일도 아니다.

밥을 먹기 위해 일하는 것 말고, 일상생활 말고, 여가생활 말고, 그 외의 어 떤 일, 이벤트 같은 것 말이다 .

누구는 당구를 배울 수도 있고, 누구는 궁중요리를 배울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이는 인간이 이 세상을 좀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겪어 보니 좋다.

삶에 있어 중요하다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내가 즐거우면 남도 즐거워지고, 그들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된다는 거다.

 

요즘 후배들에게 강조하는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취미가 하나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거다.

5년간 밤낮없이 일만 하다보니 내가 너무 소모되는 느낌을 받았다.

또 요 근래 건강이 안좋다보니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여행? 그건 직장인들에게 즐길 수 있는 취미라기 보다는 어떤 이벤트에 가깝다.

공부? 평생 즐겁게 매달릴 수 있다면 공부도 하나의 취미가 될 수 있긴 하겠다.

블로그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만 올해 난 인테리어, 레고, 피규어, 게임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시도하고 있다.

아 참. 블로그도 다시 시작했구나.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다보니 하나가 질려도 또 다른게 받쳐줘서 좋다.

 

무겁진 않았지만 오히려 무겁지 않아서 더 좋았던 책.

비행기에서 읽어서 그런지 여운이 더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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