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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온유님의 서재
  • 우리끼리도 잘 살아
  • 한소리
  • 13,500원 (10%750)
  • 2022-07-25
  • : 105
한소리 작가님의 <우리끼리도 잘 살아>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두꺼운 책을 읽는 것에 작은 무게감을 느끼는 제가 한 시간만에 읽을 수 있던 것은, 오로지 작가님께서 읽기 편하게 문장과 이야기를 구사해 주신 덕분입니다.



제가 <우리끼리도 잘 살아>를 읽으며 울었다가 웃을 수 있던 건 작가님의 이야기에 큰 공감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우잘살은 첫째 소리와 둘째 윤희, 그리고 엄마 수자씨의 얘기를 중점으로 흘러갑니다. 또 새로운 가족인 라이와 디디, 딩딩이도 나옵니다.



세 모녀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모녀로 살아 본 이라면 매우 공감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저를 울리고 웃게 만들었던 건 수자씨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수자에게 나는 모자를 사 주기로 다짐했다. 오로지 패션을 위한 모자! 수자처럼 멋진 쇼트커트 여성은 세상에 더 없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끼리도 잘 살아, 한소리, 98p

인용한 문장들은 분갈이1 시가 등장하기 전 ‘가발 찾기’ 대목의 마지막입니다. 저의 엄마는 암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셨고, 여전히 아프지만 이따금 아픈 채로 가끔 건강하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의 엄마인 은숙을 떠올리며, 수자씨를 떠올리며 분갈이1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파하고 슬퍼하는 가족을 보며 감정에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실은 나, 당신을 남몰래 / 사랑하고 있었나 보군

우리끼리도 잘 살아, 한소리, 시 <분갈이1>, 99p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일일 겁니다.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해주는 가장 가까운 존재들.



가족이란 진정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버리고 싶지 않은 나의 것일 겁니다.



수자씨는 암 진단을 받은 뒤 산악대장을 관둡니다. 사랑하던 일을 자의로 관둘 수밖에 없는 상황은 세상을 미워지게 만듭니다.



우잘살을 읽던 저는 ‘산악대장은 그만두지만’ 부분에서 수자씨가 되었다가, 소리가 되었다가, 다시 수자씨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맞아. 내가 대장인데. 난 나답게 할 거야. 수자 아지아자 파이팅! 산악대장 나가신다! 소리야, 엄마 다녀올게!”

우리끼리도 잘 살아, 한소리, 112p

저절로 안녕히 다녀오세요 소리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엄마가 사랑하는 일을 하러 가는데,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 했다가, 그 사람들이라는 게 부조리함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알게 됨을 이후로 화내었다가 응원하고. 일련의 과정이 연상됩니다. 마치 제 일, 은숙의 일 같습니다.

“이젠 옛날처럼 산도 못 타겠어. 몸이 안 좋아져서.”

“소리야, 이제 정말 그만두려고.”

우리끼리도 잘 살아, 한소리, 112p

솔직히 작가님께서 이 부분에 이 문장을 넣으신 데에 고소를 하고 싶어집니다. 어떻게 이렇게 울리실 수 있나요?



응원하던 순간이 지나고서 독자인 제가 사랑하게 된 수자씨에게 고난이 생긴 것이, 제 일인 것처럼 무너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지진 않습니다. 수자씨에게는 소리와 윤희와 라이, 디디, 딩딩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있습니다. 또 수자씨가 사랑하는 많은 일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산악은 잠시 중단되는 것뿐. 잠시 멈추는 것일 뿐. 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수자씨에게는 소리와 함께 갈 ‘프랑스’가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를 함께 방문한 수자씨와 소리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집니다. 수도원을 들렀다가 낮은 담벼락과 지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수자씨가 상상됩니다. 오를 수 있는 절벽에 올라 보이는 풍경을 좋아하는 수자씨, 작은 바닷가 마을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수자씨,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별들을 눈에 담고, 눈동자 자체가 우주가 되어버리는 수자씨, 자전거를 타고 에펠탑 앞까지 가 보는 수자씨.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할까 고민하는 수자씨. 집에 도착해서 드디어 집이다! 여행 너무 재밌었어. 라고 소리에게 말하는 수자씨.



수자씨의 모습이 상상가서 저절로 웃음 짓게 됩니다. 어쩌면 이 상상은 제가 사랑하는 은숙의 모습을 수자씨와 함께 배치한 걸 수도 있겠습니다.



소리는 윤희를 탄생 전부터 좋아해왔습니다. 윤희가 태어나니 더 좋아합니다. 동네방네 소문냅니다. 윤희가 너무 예뻐서 배우를 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소리가 그리는 윤희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동생입니다.

윤희는 기분이 좋아져 기세등등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치. 좀 멋있는 것 같아.”

우리끼리도 잘 살아, 한소리, 134p

너무 사랑스럽지 않나요? 이런 말을 하게 된 경과까지 살펴보면, 제 동생이, 제 딸이 아닌데도 너무나도 사랑스럽습니다. 윤희는 라이와 디디를 처음 발견했을 때도 소리를 찾습니다. 곤경의 첫 발견에서 자매의 존재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는 것은 그들의 유대가 끈끈함을 보여주는 방증 같습니다.



서로의 상주가 되기로 약속하고 서약서를 미리 쓰는 일. 제가 엄마와 언니에게 상주 되기를 말했다면 등짝부터 맞았을 것입니다. 혹은 말도 안 되는 말이라는(이미 발화했으니 말은 되었는데도…)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죽음 뒤까지 서로를 생각해 주는 애정은 너무나도 갖고 싶은 것입니다.



소리씨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레즈비언임을 깨달았던 때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L입니다. L은 레즈비언을 뜻합니다. 유튜버 예** 씨가 손가락으로 알파벳 L을 표시하는 장면이 상상됩니다. 아직까지도 성소수자는 많은 차별과 혐오를 마주합니다. 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의 눈치를 보는 일도 많습니다. 당장 저 같아도 젠더퀴어임을 커밍아웃하지도 못하고 말이죠. 그러나 소리는 ‘남들이 눈치보게’ 만들어버립니다. 바로 당당함으로 말입니다. 그 점이 제일 유쾌합니다. 매우 닮고 싶은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울증은 사람에게 죽음을 가깝게 만들어버립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우울증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는 글을 봤을 때 매우 놀랐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제게는 죽음은 너무 쉽고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두 번의 생일날에 두 번의 장례식을 치릅니다. 유언집을 내기도 합니다. 삶을 발견하고, 또 죽음을 발견합니다. 그때의 발견이 제게도 죽음보다 가깝게 느껴져서, 저를 또 살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울다가, 방전된 배터리처럼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친다.

우리끼리도 잘 살아, 한소리, 49p



이유도 모른 채 울다가, 눈물을 그치고 바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공황장애 때문에 어딘가로 훌쩍 가지 못하는 것. 너무나 공감이 가서 속이 씁쓸해집니다.



소리는 아픔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오랜 시간 지하철을 타지 못하던 소리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게 됩니다. 그 과정을 트위터에 알리자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또 소리를 지하철에 오를 수 있게 하지 않을까요. 소리가 아닌 저도 지하철이 아닌, 두려운 공간에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연대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을 읽다가 엄마인 은숙에게 가서 “엄마, 이 책을 엄마도 꼭 읽어 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다가 울어버렸습니다. <우리끼리도 잘 살아>의 이야기는 소리 개인의 얘기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 나의, 은숙의, 친언니의, 또는 여성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의 얘기인 것 같습니다.



다리가 여러 개인 테이블보다 세 개의 다리인 테이블이 안정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삼각형. 세 모녀. 그들의 노력과 친구됨은 새로운 안정감을 안겨 줍니다.



안정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잘 살기만 하면 됩니다. 소리도, 윤희도, 수자씨도, 그리고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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