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작가님의 청소년 소설 개정판의 마지막 책, 얼음이 빛나는 순간.
이 책을 다 읽고서 서평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오의 이야기는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석주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로 이어지면서, 사건의 끝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만나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이런 구성 때문인지 책을 펴 드는 순간 부터 이야기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했고,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석주와 지오의 같으면서도 다른 둘의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아빠의 성화에 캐나다 유학을 다녀온 지오. '실패'라고 명명된 유학으로 인해 다른 친구들보다 한 살 많은 나이로 태명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전국의 아이들이 모두 모인 명문 기숙학교. 그 곳에서 석주를 만난다. 평생 부모님의 말은 거역해본 적이 없는 석주를 보며 '마마보이'라고 놀리지만, 그 아래에는 동생과 캐나다에 가 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정 붙일 곳 없는 지오의 삶은 기차에서 자기 자리에 앉지 못해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그 처지가 너무 딱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삶에 대한 불만을 조금씩 표출하는 지오와는 달리 석주는 평생 부모님의 말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석주가 조용히 혼자 기숙사에 남으려다 사감에게 걸려 지오와 함께 학교 밖에서 주말을 보내게되고, 자전거 여행 끝에 사과 과수원인 은월농장에서 은설이를 만난다. 은설을 마음에 품고 있지만, 자신과는 다른 자유분방함을 가진 지오에 대한 열등감에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결국 삶을 뒤바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뒤흔드는 선택을 한 석주의 내면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 하며 소설을 자꾸만 곱씹게 되었다.
인생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 지는거야.
사는게 평탄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고난이 닥쳤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면 그제야 진면목을 알 수 있지.
- 얼음이 빛나는 순간 / 이금이 / 밤티(2022)
이금이 작가님의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청소년기는 어땠었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인생의 분기점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졌었나?
나의 부모님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었나?
삶의 선택을 부모님께 의존하고 싶던 순간이 떠올랐다.
대학이라는 진로를 선택하고, 학과를 결정하는 순간이 특히 그랬다.
그랬기에 은설을 만나기 전 까지의 석주의 삶을 이해하는것도 어렵지 않았다. 나 대신 먼저 살아본 부모님의 의견에 따르는 삶. 게다가 먼저 나서서 앞 길을 닦아 주시는 부모님이라니. 그런 부모님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마주하기 전까지 석주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부모님께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 자신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은설의 아버지와 은설을 보며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책임지는 삶에 대해 지오보다 먼저 눈을 떴다.
은설의 아버지는 스물 세살이 되어 다시 만난 지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석주 잘못이 아니여.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안 나겄나. 따지고 보마 우리 설이, 내가 그레 갈칫다. 지 인생은 지가 선택하는 기라고 말이여. 부모가 할 일은 그 선택을 믿고 응원해 주는 기 말고 뭐가 더 있겄나.
- 얼음이 빛나는 순간 / 이금이 / 밤티(2022)
이른 봄, 얼음 녹을 때 냇가에 가 본 적 있어?”
깨진 얼음장이 흘러가다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어. 돌에 걸리거나 수면이 갑자기 낮아져 얼음장이 곧추설 때야. 그때 햇빛이 반사돼 빛나는 건데 그 빛이 얼마나 찬란하지 몰라. 얼음장이 그런 빛을 내려면, 우선 깨져야 하고 돌부리나 굴곡진 길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해.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거야. 사는 게 평탄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고난이 닥쳤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면 그제야 진면목을 알 수 있지.
- 얼음이 빛나는 순간 / 이금이 / 밤티(2022)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지오의 아버지처럼, 석주의 엄마처럼, 은설의 아버지처럼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소설을 통해 각기 다른 부모와 자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