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시가 주는 감동 때문에 나는 시 읽기에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보통 내용에만 신경을 씁니다.
시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주제가 뭔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이해가 안 되면 답답해하고.
형식에는 별로 신경을 안써요. 왜 여기서 행갈이를 했는지, 왜 이렇게 연을 나눴는지, 왜 어떤 문장엔 마침표를 찍고 어떤 문장엔 쉼표를 찍었는지.
그런 걸 생각하면서 읽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사실 시가 산문과 다른 건 고유한 형식때문인데...
이 문장 한 번 보세요.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어때요? 별 느낌이 없는 표정인데, 그럼 이건 어때요?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
하상욱이라는 베스트셀러 시인이 쓴 시입니다. 내용은 같지만 행갈이를 해놓으니까 행이 끝날 때마다 잠깐씩 쉬면서 좀 천천히 읽게 되고 생각도 더 하게 되고. ‘그’라는 두운과 ‘까’라는 각운이 눈에 확들어오면서 리듬감이 더 느껴지죠. 시라는 형식이 내용을 더 강화하는 것 같습니다.“ (<시 읽는 법> 50쪽 김이경, 도서출판 유유)
시에 도전하는 내게 꼭 맞는 시 길잡이 책이 나왔다.
김이경 작가가 <시의 문장들>에 이어 5회의 시 강연을 풀고 다듬어 낸 책인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손을 놓기 어렵다.
예술의 역사와 국내외 동서양 시인들을 넘나드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소개한 시들에 대한 작가의 통찰, 시를 자기 것으로 이해하는 작가의 고뇌를 읽다보면 두껍지 않은 책인 데도 힘과 무게가 느껴지고, 시 이해가 깊어짐을 느낀다.
시가 뭘까,
시를 어떻게 읽을까,
영화로 읽는 시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 읽기,
역사로 시 읽기
“자 그럼 이렇게 대단한 시인(네루다)이 어떤 시를 썼는지 한번 볼까요.
거울은 샘물의
미라, 밤이면
빛의 조개처럼
입을 다문다,
거울은
어머니 이슬.
노을들을 박제하는
책, 살이 된 메아리.
광시곡(Rhapsody)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감이 오세요? 저는 처음에 어안이 벙벙했어요. “거울은 샘물의 미라”까지는 그럭저럭 이해가 돼요. 똑같이 영상을 비추지만 거울은 고체고 샘물은 액체니까 미라라고 했구나. 그런데 빛의 조개처럼 입을 다무는 건 뭐고 어머니 이슬을 또 뭐지? 이상한 거예요. 그냥 넘어가려니 갑갑해서 한참 들여다보는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게 은근히 재미있더라고요......“(<시 읽는 법> 65쪽, 김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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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시를 더해 뜻밖의 여행을 떠나시고 싶은 분들 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