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읽는 즐거움
  • 노동이란 무엇인가
  • 박홍규
  • 19,080원 (10%↓1,060)
  • 2026-08-18
  • : 865
한국의 직장인으로서 '근면'의 태도를 실천하고자 아픈 몸을 질질 끌고 몇 백 미터를 걸어간 뒤에 출근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는 습관처럼 책을 펼쳤다. 무척 아팠던 그날 펼쳤던 책이 바로 박홍규 선생님의 『노동이란 무엇인가』였다.

❝ 20세기 사상이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유토피아적인 탈노동을 주장하는 반면, 현대 한국의 노동관은 일만 죽어라 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한국인의 노동관은 세계인의 노동관과 차이가 있고 비인간적입니다. 한반도의 노동관은 여전히 파시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_ 7쪽 <머리말> 중

평소 나는 아파도 회사에서 아파야 하며, 다쳐도 회사에서 다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출난 업무 역량이 없으니 근면성실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예 노동관은 뼛속까지 스며들어 나의 몸과 마음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으니 얼마나 몰입하여 읽었겠는가?


최근에 김영민 교수님의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를 읽으며 책 옆에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ㅋㅋㅋ"를 엄청나게 써넣었다.

이번에 읽은 박홍규 선생님의 책에도 수많은 문장에 공감하였고 응답하였다.


❝ 여기서 노동이란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것이고, 노동조합 같은 것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말고 국가의 지도에 따라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노예 노동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예 노동관은 인류 역사상 모든 시대의 지도자와 그들 밑에서 아부하는 철학자 들의 일관된 노동 사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노동하고 생산하는 것만을 유일한 미덕으로 찬양하고, 여가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보려 시도하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죄나 원죄에 속한다고 봅니다.❞
_ 39쪽 중


이 책의 부제는 강렬하다.
'노동 멸시의 역사를 넘어 노동 민주주의로'


지은이는 대한민국의 노동관을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우리의 노동관에는 직업 봉건주의, 노동 봉건주의의 악폐의 뿌리가 여전히 깊이 박혀 있다. 우리의 노동관은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각자도생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은이는 공동체도, 사회도, 국가도 없는 기막힌 현실을 제대로 보는 안목을 길러주기 위해 근대 이전의 노동관과 근대 이후의 노동관을 나누어 샅샅이 살핀다.


'열심히 일하자'의 노동관은 도대체 언제 생긴 것인가? 한편 온갖 인문서에서 찬양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노동을 멸시했다는 것은 아는가? 한편 '노동'과 '근로'의 차이는 무엇인가? 언제부터 노동자가 '근로자'가 되었을까?


'무조건 열심히 일하라'의 뜻이 담긴 '근로' 노동관은 장 칼뱅에게 영향을 받은 장로교의 흔적이다. 칼뱅은 마르틴 루터와 함께 프로테스탄티즘을 만든 종교개혁가로, 그는 노동에 높은 가치를 두고 노동과 무관하거나 재미있고 쾌락을 주는 활동은 무엇이든 배척했다.


한국의 '근로' 노동관은 기독교의 노동관에 산업교, 국가교, 새마을교, 박정희교가 합해진 것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이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반도덕적이고 반인간적인 존재로 추락하게 된 역사를 거슬러 훑어보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그 근본부터 재검토하게 된다.


인간의 역사를 훑어보면 대다수의 철학자, 사상가들, 지식인들, 엘리트들은 노예를 선천적이라 생각했고 지은이에 따르면 예외는 디오게네스, 블레이크, 톨스토이, 모리스, 졸라 등에 불과하다.


이 책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노동 민주주의라는 유토피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은 '하루 4시간, 1주 4일 16시간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정도가 원시시대 '자연인'의 노동시간이고, 수백만 년간 인류의 보편적인 노동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서구가 찬양하는 그리스 시대에 철학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노동이 멸시되기 시작했고 노동, 특히 육체노동은 천박한 노예의 몫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스 철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철학이 그러했다는 지은이의 주장에 주목해보자. 언제부턴가 동서양 철학에 깊게 배인 엘리트주의 냄새에 민감해진 내게 그간의 교양 철학서 읽기를 되짚어보게 한다. 내가 그토록 전두엽에 힘을 주고 읽었던 서구 철학 책들에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나.


이 책 2부 [근대 이후의 노동관]은 근대 서양과 근대 동아시아의 노예관, 근대 서양의 노동관, 19세기 서양 사상과 예술 유토피아의 노동관, 20세기의 서양 파시즘과 서양 사상과 예술 속 노동관 등을 포괄적으로 살펴본다. 우리 그토록 열심히 읽어온 서구의 사상가, 예술가들의 노동관을 훑어보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묘미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의 임금 노예로 평생 살아갈 처지르임을 강하게 깨달은 뒤 나는 때때로 숨이 막혔다. 너무나 순종적인 '노예' 노동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감히 유토피아를 꿈꿔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내게 말한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노동 민주주의라는 유토피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이다. 어느 책은 삶의 태도를 바꾼다. 박홍규 선생님의 책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를 구입해서 읽은 뒤, 내 삶은 비록 노예의 삶이지만 '읽기'가 있기에 좀 더 버티고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직 읽기 위해 살기로 말이다. 자본주의적 삶은 이미 내게 수명을 다 했다. 이번 책 『노동이란 무엇인가』는 무력하고 순종적이며 뼛속 깊이 노예근성이 박힌 노동자인 내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이런걸 두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상상력'이 길러졌다고들 하는 것 같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