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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 포인트
- 슬라보예 지젝
- 17,100원 (10%↓
950) - 2026-05-13
: 4,570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1946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태생으로 8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생산적이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우리 시대의 온갖 정치경제적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수십 종의 책들, 왕성한 대중 연설들이 보여주듯 그는 '현행성의 철학자'이다.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철학에 대해 체계적인 조예도 없지만 지젝의 책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는 있다. 우리 집 서재에 지젝의 책을 꽂는 방식이기도 하다.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인 학자 지젝이 쓴 이론서들과 현실 참여적 지식인 지젝이 쓴 국제정세 관련 논평/에세이들이다. 『제로 포인트』 는 후자에 속한다.
『제로 포인트』의 1부는 세계정세에 관한 철학적 개입 에세이들이고 2부는 가자 학살에 관한 에세이들이다. 2부는 2023년 10월 17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전 연설 이후 벌어진 해프닝 이후 쓴 글들을 엮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 중 '가자를 위한 철학'은 2부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제로 포인트』 1부에서 독자인 우리는 지젝의 해석을 거친 우리 세상의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1부에서 지젝은 '우리의 사회, 경제적 제로 포인트뿐 아니라 글로벌 전쟁의 위협과 강간 문화까지, 각기 다른 영역에서 하강 나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일반적인 개요를 제공하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지젝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왔다. "정치 대신 전문가들의 행정, 집단적 권리와 연대가 아닌 개인의 자유, 사회 복지보다는 민간 자선, 예술 대신 문화, 계급투쟁 대신 특정한 정체성, 사랑 대신 섹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단어 두 개를 더 추가해 보자. '우파 포퓰리스트', '글로벌 자본주의'. 그리고 더욱더 강조돼야 할 단어들도 있다. '금융의 광기', '경제 정치', '연성 파시즘 등. 국제 정서와 관련해서는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이다.
한편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우리 세계의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젝의 이야기에는 '좋은 사람은 없다. 그저 어느 정도 나쁜 사람들과 결코 쉽지 않은 선택들이 있을 뿐이다.' 한국 사회 역시 분열과 갈등이 폭발하고 있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드론 폭탄에 찢겨 죽는 수준은 아니다.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절대적 빈곤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최소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덕택에 '각자 자신 특유의 '자기 돌봄', 자신의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분산된 개인들'로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대의는 사라졌다. 지젝은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대부분 단순히 자신들의 편안한 삶을 지키고 있을 분이고 그런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우크라이나를 희생할 것이라 말한다. 나는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2부는 가자 지구 참상과 관련하여 지젝이 일기처럼 써 내려간 에세이들이 엮여 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하여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헬리나 코번, 라미 G. 쿠리 지음, 동녁 출판사, 2025), 『이스라일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일란 파페 지음, 교유서가, 2025) 등을 읽었기에 지젝의 논평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평소 좋아하는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지젝을 향한 비판과 지젝의 반론,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유발 하라리, 노엄 촘스키 등이 가자 지구 참상과 국제 정세와 관련해 내놓은 논평들에 눈길이 갔다.
2부에서는 지젝이 거듭하여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 심지어 2부 제일 마지막 글은 <다시 또 요약>이다. 지젝은 새롭고 독창적인 반전에 반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요약하는 것은 '본성을 거스르는 무언가'라고 한다. 먼저 가자 지구 사태와 관련해서는 둘 다 그 땅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 비극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상호 인정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실행하지 않는 그것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우리 집 지붕에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그 어떤 글을 읽더라도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라는 위선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피해자를 향한 동정심에 깃든 비밀스러운 주이상스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독자가 되었다. 나는 나의 위선적인 면을 깨달은 상태까지는 왔지만 지젝이 말하는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다'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젝이 지치지 않고 논평을 쏟아내고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이 웬만하면 '제대로 된 말'을 하길 원해서 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다음 해야 할 것은 사라져 버린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대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여전히 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자기 안의 위선이라도 깨닫자. 우리는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알면서도 그것이 깨지기를 원치 않는 존재이니 말이다.
*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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