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 는 138억 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부터 포화 상태에 이른 행성 지구의 오늘까지, 이 긴 시간 동안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했었고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판사는 이 책을 '과학 지리서'라고 소개한다.
이 책은 지구와 생명체들의 역사를 생물물리학 관점으로 설명한다. 즉 인간동물의 역사를 자연에서 따로 떼어 구분하지 않는다.
* 생물물리학 : 물리학의 눈(법칙과 도구)으로 생명 현상을 분석하는 학문. 그동안 생물학이 "생명체는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현상과 분류에 집중했다면, 생물물리학은 "생명체도 결국 우주의 물질인데, 어떤 물리적 법칙(역학, 열역학, 전자기학 등)에 지배를 받으며 움직이는가?"를 탐구한다.
이 책에서 자연과 인간동물을 분리하여 생각해온 서구의 이분법적 자연관은 통하지 않는다. 이 자연관은 책에서 '과학의 역사'라는 일종의 과학사 특집 코너의 어느 글 딱 하나에만 나온다. 이 글마저도 이러한 서구의 이분법적 자연관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설명한다.
생물물리학 세계에는 은하 간 공간에서부터 원자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결코 '자연'이라 불리지 않고, 인간동물도 지구 표면에 사는 전체 생물의 일부로서 포함된다. 인간중심적 사고가 보편화된 이후 자연은 인간동물의 생존과 번영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 결과 지구 온난화와 생물종 감소, 다양한 형태의 오염이 심화되었고, 이제서야 인간동물들은 지구 생태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런 우려는 이 지도책을 출판하는 결정에 한몫을 했다고 한다.
138억 년에 이르는 억겁의 시간 속에 지구라는 행성에서 펼쳐진 생명 현상의 동역학을 일반적이면서 열린 관점으로 다루기 위해 세계적인 지리역사학자 크리스티앙 그라 탈루뿐만 아니라 고고학, 천체물리학, 생물학, 기후학, 역사학, 행성학 등 3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여기에 프랑스 최고의 역사 전문지 <역사(L'Histoire)>의 방대한 아카이브가 더해져 300가지 지도와 인포그래픽으로 지구 행성의 역사를 살펴본다.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 는 역사책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와 함께 지구라는 행성에서 펼쳐진 생명체들의 이야기와 그중 하나인 인간동물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풍성하게 보여주는 역작이다. 나는 그 어떤 글을 읽더라도 이 두 권의 책과 함께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문학을 읽을 때도, 국제 정서를 다룬 슬로베니아 출신 문제적 철학자의 글을 읽을 때도, 오늘 자 국제란 뉴스를 볼 때도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펼친다.
" 이 책은 지구에서 살아간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리학으로, 사회들과 생물물리학 세계들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도와 간단하고 명확한 모형으로 표현하려는 과학적, 교육적 필요성에 중점을 두어 기술한다."
총 9개의 역사의 층
이 책은 지구의 역사를 총 아홉 가지의 '역사의 층'으로 구분한다. 각 역사의 층이 책의 각 부에 해당한다.
1. 빅뱅에서 행정 지구까지
2. 핵에서 성층권까지
3. 생명의 행성
4. 사람 동물
5. 순화
6. 대농업 시대
7. 자원의 세계화
8. 화석 탄소 시대
9. 포화 상태의 행성
138억 년에 이르는 우주 전체 역사를 24시간으로 압축하여 각 역사의 층이 일어난 때를 보여준다. 우주의 역사를 24시간으로 축약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널리 빅뱅이 일어난 때가 0시라면 지구의 탄생은 오후 4시 11분에 일어났다. 지구에 생명현상이 일어난 것은 조금 뒤인 오후 5시 55분이다. 인간동물은 자정을 조금 앞둔 밥 11시 59분 18초에 지구 행성에 등장했다. 농업을 시작하고 온갖 사회를 만들었다가 해체하고 산업화를 시작하는 등 우리 인간동물의 성문화된 역사책을 가득 메우는 이야기들은 불과 자정 1초 전에 시작된 것들이다.
협소한데다가 뒤틀리기까지 한 인간동물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 행성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균형 잡히고 겸손한 태도로 지구 행성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동물은 지구의 지배자도 주인도 아니다. 그저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과 비물질 존재들과 함께 더부살이하는 존재일 뿐이다.
과학사에서 일어난 역사적 순간들
책 중간중간에는 어두운색 배경의 특집 페이지가 끼여있는데, 이 특집은 과학사에서 일어난 역사적 순간들을 다룬다. '과학의 역사'라는 코너로 코페르니쿠스 혁명, 지구의 크기 측정, 평면 지도 제작, 기후 이론, 진화론, 선사학, 농업의 시작, 과거의 기후 측정, 인류세의 출발점 등을 다룬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탄생한 지구라는 행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구물리학과 생물학 지식뿐만 아니라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축적되어온 인간의 집단적 앎에 대한 지식도 필수이다. 과학사를 다룬 교양 과학책들 중에는 벽돌책 두께를 가진 것들도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과학사의 영역 중 소수의 주제들만 선택했다. 이 주제들은 현대 사회의 주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과학의 역사' 코너에서도 서구 중심적 역사관과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난 설명이 돋보인다.
"자연의 지배자이자 주인"이라는 제목의 글(p220~221)은 인간 동물이 자연의 지배자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데카르트는 그 유명한 책 《방법 서설》 제6부에서 "우리는 불, 물, 공기, 별들, 하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물체의 힘과 작용을 알고...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연의 주인과 소유자가 될 수 있다."라고 썼다. 이 유명한 문장은 지난 3세기 동안 널리 받아들여졌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자연을 인간동물과 분리한 뒤, 이 자연을 도구처럼 마음껏 휘둘러왔다.
한편 이 글에서는 이러한 자연/문화 이원론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서구 사상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많은 사회에서 인간과 나머지 세계 사이에 서구의 것만큼 극단적인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가 체계화한 세계와의 관계 형태 분류는 '자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 구성이라는 견해를 보여준다. 데스콜라는 육체성과 내면성이라는 두 축을 기준으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애니미즘 토테미즘, 자연주의, 유추주의 총 네 개로 분류한다. 여기서 자연주의 사회(서구 사회)만 인간과 비인간(자연)을 구분하고 자연을 대상화한다. 그리고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러한 자연주의에 해당하는 곳은 서유럽과 한반도+일본 두 곳 밖에 없다. (한국이 포함되어서 인상 깊었다)

인간동물에 대한 이야기
나는 우주적 관점에서 책을 읽기 위해 늘 노력을 하는 독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데 역시나 인간동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이 책에 실린 방대한 지구 역사의 이야기 중 나의 독후감에 골라온 것이 결국 인간동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골라온 의도는 분명 더 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빅히스토리 전문 이야기꾼 유발 하라리 덕분에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용어에 무척 익숙하다.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의 역사를 다룬 책들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꽤 많다. 성실하고 친절한 역사와 과학 분야 커뮤니케이터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인간과 지구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꾸준히 접해온 덕분에 이 책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에 등장한 인류의 대장정에 관한 지도와 호모 사피엔스의 이종 교배에 관한 인포그래픽을 보다 감동적으로 대할 수 있는 독자가 되었다. 우리 독자들은 그간 읽어온 것들이 서로 만나 섞일 때 크나큰 행복을 느낀다.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는 페이지 페이지마다 내게 행복감을 안겨 준다.

이 책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는 탁월한 지은이들이 모여 우수한 아카이브 중에서 지도와 인포그래픽으로 변환될만한 앎을 선택한 결과물이다. 생성형 AI에서 결코 받을 수 없는 신뢰감을 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들이 넘쳐나는 요즘 학습자들은 선택에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 나는 평생토록 역사를 공부할 학습자이자 독학자이다. 내겐 너무나 든든한 두 선생님이 존재한다.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와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라는 선생님들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