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키코 부시'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온라인 서재 계정의 주인이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이라는 책을 호평했기 때문이다.
나는 '침묵', '드러내지 않기', '도피', '숨기', '침묵', '듣기' 등을 주제로 한 책을 좋아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있어 보이게 연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매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지치고 소모적이고 파괴적인지 깨닫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기 증명과 매끄러운 자아 연출이라는 시대적 부름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예전보다는 나은 형편이다. 그런 내가 아키코 부시의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을 사서 읽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번 책 『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 는 '집'이라는 공간의 모호한 이면에 주목한다. 지은이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안정에 관한 이야기며 동시에 불안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집은 우리의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고 상호작용한다. 언어화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다. 집은 종종 후자에 속한다.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과 늘 상호작용했지만 언어에 탁월하게 민감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사춘기 무렵부터 독립할 때까지 살았던 나의 어둡고 좁았던 방은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 우리는 집에서 때때로 혼동, 실수, 착오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마음속 불편함의 정체를 파악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엇인가 어긋나 있는 듯한 느낌이 때로는 어떤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니까. "
독자인 나는 '집'이라는 공간을 배경에 얽힌 지은이의 기억을 하나하나 경청했다. 지은이는 동남아시아에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전형적인 농가의 형태였던 단층 목조주택에서 살았다. 지은이가 유년 시절 사랑했던 공간인 거실과 거기 있었던 회전의자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것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길어올린 '모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동원된다.
지은이가 현재도 거주하고 있는 허드슨 밸리의 집 이야기를 듣는 것은 특히 좋았다. 이 집은 18세기 초에 지어졌고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길렀던 공간이다. 오래된 집은 끊임없는 보수가 필요하다. 소비주의 시대는 '새것'과 '신상'을 찬양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입지 좋은 곳의 '새집'이 가진 경제적 가치는 어지러울 만큼 찬양되니 말이다.
집이라는 공간 안을 메운 물건들 중 오래된 것이 찬양받는 것은 그것의 경제적 가치가 있을 때에 한한다. 낡고 오래되었으며 당근 거래에 무료로 내놓아도 아무도 관심 주지 않을법한 헌 물건은 반(反) 자본주의적 존재이다. 그러나 지금은 잊었지만(어쩌면 잊음을 강요당했지만) 한때 우리 모두가 알았다. 나의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들의 가치와 그 애틋함을. 비인간 존재인 물건은 인간동물인 우리와 상호작용한다. 사물들은 그 목적을 다하면 사라지지만 그것은 결핍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생명력을 다하고 그것이 가진 기능이 존재했던 자취를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다.
책의 1부 <INSIDE> 집안에 대한 이야기 중 '바람'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한국의 선풍기가 등장한다. 이 글에서 밑줄을 그었던 부분은 다음이다.
"주거 공간은 안전하고 편안해야 한다는 믿음, 소비재에 대한 집착, 불가사의한 문화적 신념 등이 뒤엉킨 요인들로 인해 특히 집에 대한 유난하고도 기이한 불안이 탄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p74)
책의 2부 <OUTSIDE> 는 집이라는 공간 밖을 배경으로 한 저자의 기억과 사유에 대한 글을 모았다. 아파트 공화국에 살고 있는 나는 자연이 펼쳐진 공간이 무엇인지 글로만 읽었다. '편애의 기술'이라는 글에는 자연을 주제로 쓴 글을 질색하고 안 읽는 지은이의 친구 브룩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나는 질색까지는 아니지만 경험이 없어서 자연을 묘사하는 글이 몇 페이지 이상 길어질 때는 종종 집중력을 잃는 편이다.
"장소나 공간은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타인의 삶을 엿보게 해준다"(p181)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우리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지. 우리는 스스로를 과하게 노출하는 집에 타인을 초대하기 꺼리기도 한다.
나는 아키코 부시의 『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 를 읽으며 저자가 살고 있는 허드슨 밸리의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 집은 오래되었지만 우아하다. 두 세기가 넘은 오래된 집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유지하기 위해 집안 곳곳의 먼지를 털고 바닥을 쓸고 구석구석 닦았던 집주인의 부지런함이 시선이 던지는 곳마다 느껴진다.
지은이의 집에 초대받았으니 구석구석을 눈에 담고 갈 것이다. 1826년산 코로넷 리버티 동전이 있을 지은이 책상 위 창턱도 꼭 보아야지. 문간에 걸려 있는 그 액자 - 이웃 사람이 어린 곰을 조심하라고 써준 쪽지를 액자로 만든 것 -도 꼭 보고 싶다. 지은이의 집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전력회사에서 띄우고 갔다는 그 주황색 풍선도 구경하고 싶다.
나는 언제부턴가 새로운 물건을 사도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불경한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다. 끊임없이 소비를 해야 자본주의가 굴러갈 텐데. 입지가 좋은 동네의 새 아파트에 입주해야 노후가 보장될 텐데 나는 수십 년째 땅값이 오르지 않는 동네에 살고 있어도 별다른 불만도 불안도 없다. 더 많은 대출을 해서 끊임없이 아파트를 '갈아타야' 은행도 시장도 기뻐할 텐데.
나는 낡고 사소한 것들이 속삭이는 말들이 조금씩 들리려고 한다. 내가 좀처럼 타인과 나누지 않는 경험이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아키코부시
#낡고사소한것들의자리
#멜라이트
#에세이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