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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력 : 6가지 우회적 성찰
  • 슬라보예 지젝
  • 28,800원 (10%1,600)
  • 2026-04-23
  • : 1,050
‘로쟈’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서평가 이현우는 절판되었다가 15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슬라보예 지젝의 『폭력』 개정판 옮긴이의 후기에서, 20년 전에 쓰인 이 책이 던지는 ‘폭력’이라는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며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동물의 세상에서 ‘폭력’이라는 화두가 사라지게 되는 날이 올까? 오히려 이 화두는 갈수록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한국 사회에서 가시적인 폭력(지젝은 이것을 ‘주관적 폭력’이라 명명했다)을 당하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우리는 국가권력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향해 공권력이 총을 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 다짜고짜 불심검문을 당해서 몽둥이로 두드려 맞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받을 때 신체를 훼손시키는 고문을 받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와 다른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나를 공격할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요즘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두드려 패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회사에서 상관들이 아랫사람들 욕설을 사용해가며 모욕하거나 감정이 격해졌다고 정강이를 걷어차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처럼 명확히 식별 가능한 폭력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 사회 역시 분노 사회다. 우리를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게 만드는것은 우리가 구조적 폭력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폭력은 주관적 폭력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무엇이 시위대로 하여금 화염병을 던지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테러 단체가 비행기를 납치하게 만드는 것일까. 무엇이 외국인 노동자를 멸칭으로 부르는 만드는 것일까. 무엇이 이민자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국경에 벽을 세우는 만드는 것일까. 무엇이 2008년 금융위기를 가져온 것일까. 무엇이 빌 게이츠가 어마어마한 기부를 하게끔 만든 것일까. 무엇이 가자 지구를 불태우도록 만든 것일까.

주관적 폭력 아래 은폐된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는 손쉬운 분노를 자아내는 주관적 폭력 아래 숨겨진 진짜 폭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럴 때 지젝이 제시하는 폭력의 삼각 구도 - 주관적 폭력, 상징적 폭력, 구조적 폭력 - 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은 무척 유의미하다.

우리는 압도적이고 자극적이며 가시적인 주관적 폭력을 직접 다루는 대신 상징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을 일별하기 위해 잠시 물러서야 한다. 지젝이 설명하는 폭력으로 향하는 여섯 가지 우회로를 모두 가보아야 한다. 우리를 구조적 폭력에 둔감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먼저 지젝이 말하는 폭력은 총 세 가지로 방금 언급한 주관적 폭력이 그 하나고 나머지 두 개는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다.


지젝은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을 묶어 ‘객관적 폭력’이라 말한다. 먼저 상징적 폭력은 하이데거가 ‘존재의 집’이라고 칭한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폭력이다. 온갖 멸칭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상징적 폭력의 예시를 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상징적 폭력은 습관적인 언어 사용을 통해 재생산되는 사회적 지배 관계나 선동적인 언어 속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형태의 폭력이 언어 자체에 들어 있고, 언어가 의미 세계를 대상에 부과할 때 따라붙는 것이다.


마지막 구조적 폭력은 경제 체계와 정치 체계가 작동할 때 나타나는 파국적인 결과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에는 근본적인 구조적 폭력이 존재하다. 지젝에 따르면 이 폭력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어떠한 직접적인 사회-이데올로기보다 훨씬 더 섬뜩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구조적 폭력에 둔감하다. 나 역시 20대 시절만 해도 자기계발서나 자기위로 서적을 따위를 읽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이 대게 구조적 폭력은 하나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자연스레 멀어졌다. 누군가가 일터에서 흘린 땀과 눈물, 누군가가 광장에서 쏟아낸 피와 내장들을 하나도 언급하지 않은 채, 너의 행복과 너의 감정만 돌보라고 말하는 책들은 나를 끝없이 생각에 빠트린다. 이 책의 출간된 시대적 역사적 정치 경제적 배경에는 어떠한 구조적 폭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이 책은 어떠한 구조적 폭력을 강화하고 기여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우리 집 위에 드론 폭탄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나는 출신 국가와 인종과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시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은 길거리에서 거의 보지 못한다.(구조적 폭력은 서로 가하고 있겠지만) 대신 은퇴 이후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걱정은 가끔 한다. 이 년 전부터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포함한 일체의 동영상을 시청하지 않는다. 오로지 읽고 읽고 또 읽는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챕터 중 구조적 폭력을 다룬 <1장 SOS 폭력>이 현재의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적 폭력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느꼈다. 왜냐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무척 인상 깊기 때문이다.

코스피가 7,000이라는 숫자가 은폐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은 무엇일까.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 배분을 놓고 노사 협상에 들어갔지만 서로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유회사 4사의 영업이익이 950억에서 5조 9635억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다음 달에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역시나 막말이 넘쳐흐른다. 나는 지젝의 『폭력』을 읽으며 인식의 도구를 훈련한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 상징적 폭력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 이 책에서 지젝이 소환하는 온갖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이론과 개념을 내 것처럼 사용하고 싶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개인’이라는 근대적 주체에게 삶의 모든 것은 스스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영역이라 명령한다(너의 삶은 너의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일단 본인의 탓을 한다. 나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고 그래서 나의 능력이 미천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것을 책임감 있는 태도라 말한다. 능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구조적 폭력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가 설계해 놓은 세상에서 일과 자율성의 노예가 되어 삶을 일에 통째로 갖다 받친다.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서 일터를 구한 운이 좋은 몇몇들은 ‘경쟁’에서 성공하고 오늘날 사라지고 있다는 중간계급으로 도약한다. 그러고는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이 되어 간다.

1장에서 대표적인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로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등이 등장한다. 이 책이 20여 년 전쯤 출간되었으니 나는 여기에 샘 올트만, 일론 머스크, 젠슨 황 등의 이름들을 추가하여 읽었다.

우리가 온갖 매체에서 접하는 무수히 많은 폭력적인 이미지 아래 도대체 어떠한 구조적 폭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불의에 가득 찬 온갖 사건들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는 손쉬운 분노에 휩싸인다. 우리는 무엇에 의해 이 분노가 촉발된 것인지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상태에서 부지불식간에 상징적 폭력을 가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때 우리는 지젝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우리는 바로 이 시점에 이 책 『폭력』을 읽어야 한다. 지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칫하면 주관적 폭력의 비이성적 폭발처럼 보이는 구조적 폭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한발 물러서야 한다고 말한다.

지젝은 이 책에서 전 지구적 문제를 다루면서 독자에게 말을 건다. 인도주의적 위기 사태를 보면 즉각 참여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나지만 일단 기다리면서 두고 보라고 말이다. 왜냐면 우리가 느끼는 급박함과 분노는 어쩌면 가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적이고 구조적인 폭력, 즉 객관적 폭력을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한발 물러서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나와 같은 독자들은 읽고 읽고 또 읽기로 한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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